논리학 6강. 역설
역설은 고장이 아니라 경고등입니다. 우리 개념 어딘가에 균열이 있다는 신호죠.
풀고 시작
역설이란 무엇인가
멀쩡한 전제, 멀쩡한 추론, 그런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요? 역설(paradox)은 받아들일 만한 전제들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이 멀쩡한 추론으로 도출되는 상황입니다. 셋 중 하나는 무너져야 하죠. 전제가 틀렸거나, 추론 규칙이 틀렸거나, 결론을 삼켜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당연하게 쓰던 개념 하나를 수술해야 하므로, 역설은 철학과 논리학을 전진시키는 엔진이었습니다.
거짓말쟁이 역설: 진리 개념의 균열
"이 문장은 거짓이다." 참이면 거짓이고 거짓이면 참입니다. 문제의 뿌리는 문장이 자기 자신의 진리값을 말한다는 데 있죠. 타르스키는 "참"이라는 술어를 언어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수 없게 대상 언어와 메타 언어를 분리하는 수술을 제안했습니다. 진리를 말하려면 한 층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죠. 이 수술의 대가와 대안(진리 축소주의 등)은 현대 언어철학의 큰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더미의 역설: 모호한 개념의 균열
밀알 하나는 더미가 아닙니다. 더미가 아닌 것에 밀알 하나를 더해도 더미가 되지 않죠. 그렇다면 밀알 100만 개도 더미가 아닐까요? 전제 둘 다 그럴듯한데 결론은 명백히 틀렸습니다.
문제의 뿌리는 "더미", "대머리", "부자", "성인" 같은 모호한 술어에 경계선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술 후보는 여럿이죠. 사실은 숨은 경계선이 있다는 답(인식론), 참·거짓 사이에 중간 값을 두자는 답(다치 논리), 경계 사례에선 참도 거짓도 미결정이라는 답이 있습니다. 어느 답도 공짜가 아니라서 아직 살아 있는 역설이죠. "몇 살부터 성인인가", "어디까지가 생명인가" 같은 법과 윤리의 경계선 문제가 전부 이 역설의 실전판입니다.
러셀의 역설: 집합 개념의 균열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모든 집합의 집합" R을 생각해 볼까요? R은 자기 자신의 원소일까요? 원소라면 정의에 의해 원소가 아니고, 원소가 아니라면 정의에 의해 원소입니다. 거짓말쟁이와 같은 자기 지시 구조죠.
이 역설은 취미 퍼즐이 아니었습니다. 프레게가 평생 쌓은 수학 기초론이 러셀의 편지 한 통으로 무너졌고, 수학자들은 집합 형성에 제한을 두는 공리계(ZFC)로 수학의 기초를 다시 지었습니다. 역설 하나가 수학 전체를 재건축시킨 것이죠.
역설을 대하는 태도
역설을 만나면 세 질문을 던지세요. 어떤 전제들이 충돌하는가. 그중 무엇이 가장 약한가. 그것을 포기하면 무엇이 함께 무너지는가. 역설은 피해 갈 장애물이 아니라 개념의 지도가 틀린 곳을 알려주는 측량 기사입니다. 이것으로 「논리학」을 마칩니다. 다음 과목부터 이 도구들을 들고 철학사의 현장(고대 그리스)으로 들어갑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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