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 5강. 오컴과 중세의 해체
면도날이 대성당을 자릅니다. 신앙과 이성의 이혼으로 중세가 끝나고 근대의 공간이 열립니다.
풀고 시작
균형이 무너지다
아퀴나스가 죽고 3년 뒤(1277년), 파리 주교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명제 219개를 단죄합니다. 표적에는 토마스주의 일부도 있었습니다. 단죄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철학이 "필연"이라 말하는 것들(세계는 영원하다 등)이 신의 전능을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신은 철학자들의 필연에 묶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역설이 일어납니다. 이 단죄가 오히려 사고를 해방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필연이라 한 것과 다른 세계(진공, 복수 세계)를 "신이라면 가능하다"는 틀로 사고 실험하기 시작했고, 이 관성이 후일 근대 과학의 상상력이 됩니다.
스코투스: 의지의 우위
둔스 스코투스(1266~1308)는 아퀴나스의 주지주의(지성 우위)에 맞서 주의주의(의지 우위)를 세웁니다. 신의 의지는 지성이 제시한 질서에 묶이지 않습니다. 선한 것이어서 신이 명한 것이 아니라, 신이 명했기에 선하다는 방향으로 무게가 이동합니다(에우튀프론 문제의 중세 버전이죠). 또 그는 보편적 본성 외에 개별자를 개별자이게 하는 개체성(haecceitas, 이것임)을 세워, 개별자의 지위를 격상시켰습니다.
오컴: 면도날과 유명론의 완성
윌리엄 오컴(1287~1347)이 그 다음 발걸음을 끝까지 내디딥니다.
먼저 철저한 유명론입니다. 실재하는 것은 개별자뿐입니다. 보편자는 사물이 아니라 정신의 기호(개념)이며, 여러 개별자를 한꺼번에 가리키는 자연적 기호일 뿐입니다. 실재론의 보편자들은 면도날에 잘려 나갑니다. 필요 없이 존재자를 늘리지 말라는 것이죠.
다음은 신의 절대 권능입니다. 신은 모순이 아닌 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도덕 질서도 신이 달리 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신학의 진리는 이성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신 존재 증명도, 영혼 불멸 증명도 엄밀하게는 실패합니다. 신학은 신앙의 영역으로, 철학과 자연 탐구는 이성의 영역으로. 아퀴나스가 결혼시킨 둘을 오컴이 이혼시킨 셈입니다.
정치에서도 그는 교황의 세속 권력을 논박하며(황제 편에서) 교회 권력 제한론을 폈습니다. 아비뇽에서 이단 심문을 받다 탈출한 이력까지, 여러모로 해체의 사람이었습니다.
중세의 유산 정산
오컴 이후를 볼까요? 보편자가 정신의 기호라면 지식은 개별자의 경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경험론의 예고입니다). 자연에 신이 심은 필연적 본질이 없다면, 자연의 규칙성은 관찰로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실험과학의 예고입니다). 신앙이 이성에서 분리되면 이성은 자연 탐구에 전념합니다(세속 학문의 예고입니다). 실제로 뷔리당과 오렘 같은 14세기 파리의 오컴주의자들이 임페투스 이론 등 갈릴레오의 선구 작업을 해냅니다.
중세는 실패한 시대가 아니라 도구를 벼린 시대였습니다. 엄밀한 논리학, 개념 구분의 기술, 대학이라는 제도. 근대는 이 도구로 중세의 결론을 부수며 시작합니다. 다음 과목에서 데카르트가 그 문을 엽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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