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2강. 『순수이성비판』의 내부: 시공간, 범주, 이율배반
마음의 공장 견학입니다. 감각 재료가 어떻게 경험이라는 제품으로 조립되는지, 그리고 공장이 과부하로 멈추는 지점은 어디인지 살펴봅니다.
풀고 시작
감성: 시공간이라는 수용 형식
인식은 두 줄기의 협업입니다.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감성이 재료(직관)를 주고 지성이 형식(개념)으로 조립합니다.
감성부터 봅시다. 어떤 것을 지각하든 우리는 시간·공간 속에서 지각합니다. 칸트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시공간은 경험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감성의 선험적 형식입니다. 공간을 비운 것은 상상할 수 있어도 공간 없음 자체는 상상이 불가능하죠. 이로써 기하학의 수수께끼가 풀립니다. 기하학이 선험적으로 확실하면서도 세계에 딱 들어맞는 이유는,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려면 반드시 그 형식(공간)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성: 범주와 연역
감각 잡동사니가 "대상 경험"이 되려면 개념적 조립이 필요합니다. 지성의 선험적 개념이 12범주(실체, 인과, 상호작용, 단일성, 실재성 등)입니다. 핵심 질문은 정당성입니다. 마음의 개념이 왜 대상에 타당할까요(권리 문제, 이른바 "연역"). 칸트의 답인 초월적 연역의 뼈대는 이렇습니다. 경험은 "나는 생각한다"가 동반할 수 있는 통일된 의식(통각) 안에서만 성립하고, 그 통일은 범주에 의한 종합으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범주 없이는 경험 자체가 없습니다. 범주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경험의 입장권인 셈입니다.
인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는 세계 관찰의 요약(흄)이 아니라, 객관적 시간 순서라는 경험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흄의 습관이 칸트에서 구성 원리로 승격됩니다.
이성: 이율배반이라는 과부하 경보
이성은 조건의 사슬을 끝까지 거슬러 무조건자(세계 전체, 영혼, 신)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무조건자는 가능한 경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범주를 거기에 적용하면 공장이 멈춥니다. 그 증거가 이율배반(Antinomie)입니다. 서로 모순인 두 명제가 똑같이 엄밀하게 증명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집니다.
- 세계는 시간상 시초가 있다 / 없다.
- 모든 것은 단순한 것으로 되어 있다 / 무한 분할된다.
- 자연 인과 외에 자유의 인과가 있다 / 모든 것은 자연 필연이다.
- 필연적 존재(신)가 있다 / 없다.
양쪽이 다 증명된다는 것은 질문 자체가 병들었다는 신호입니다. 칸트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두 진영 모두 현상을 물자체로 착각했습니다. 현상계는 완결된 전체로 주어지지 않으므로 "세계 전체"에 대한 단정은 무의미합니다. 특히 셋째 이율배반의 해법이 중요합니다. 현상으로서 인간은 인과 필연에 묶이지만, 물자체로서는 자유가 가능합니다. 결정론과 자유의 양립 공간을 이렇게 확보해 두는 것이 윤리학(다음 강)의 예비 공사입니다.
요약 대차대조표
흄에게 주는 답은 이렇습니다. 과학의 필연성은 구제됩니다. 단, 현상계 한정입니다. 합리론에 내리는 판결은 이렇습니다. 신 존재 증명(존재론적 증명 포함)은 이론 이성의 월권입니다. 칸트는 "신앙에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지식을 제한했다"고 썼습니다. 신·자유·영혼불멸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 이성의 요청으로 재입장하게 됩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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