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3강. 정언명령: 자율의 윤리학
옳음은 결과가 아니라 의지의 원리에 있습니다. 도덕법칙의 입법자는 신도 사회도 아닌 이성적 존재 자신입니다.
풀고 시작
결과가 아니라 준칙
가게 주인이 정직하게 거스름돈을 줍니다. 그런데 평판 때문이라면 어떨까요? 같은 행위지만 도덕적 가치는 없다는 것이 칸트의 판정입니다. 도덕적 가치는 행위의 결과나 경향성(성향·감정)이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에 행하는 의지에 있습니다. 여기서 명령의 두 종류가 갈립니다. 가언명령은 "~을 원한다면 ~하라"는 조건부 명령, 즉 영리함의 규칙입니다. 정언명령은 조건 없이 "하라"고 명합니다. 이것이 도덕의 형식입니다. 도덕이 가언적이라면 그 목적을 안 가진 사람에게는 면제되어 버리므로, 도덕은 정언적이어야 합니다.
정언명령의 정식들
보편법칙 정식은 이렇습니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검사법은 보편화 테스트입니다. 갚을 생각 없이 돈을 빌리는 준칙을 보편화하면, 약속 제도 자체가 무너져 그 준칙을 실행할 수조차 없게 됩니다(개념의 모순). 재능을 썩히는 준칙은 모순 없이 보편화되지만 이성적 존재로서 의욕할 수 없습니다(의지의 모순). 전자는 완전 의무(거짓 약속 금지)를, 후자는 불완전 의무(재능 계발)를 낳습니다.
인간성 정식은 이렇습니다.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 주의하세요.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입니다. 택시 기사를 이동 수단으로 쓰는 것은 정당합니다. 속이고 착취해서 그의 목적 설정 능력 자체를 무시할 때 비로소 위반이 됩니다. 이성적 존재는 대체 가능한 가격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존엄을 가집니다. 현대 인권 담론의 철학적 심장이 바로 이 문장입니다.
자율 정식은 이렇습니다. 도덕법칙의 입법자는 신도, 사회도, 행복 계산도 아닌 이성적 의지 자신입니다. 밖에서 온 법(타율)에 대한 복종은 도덕이 아닙니다. 자유란 방종이 아니라 자기 입법이며, 그래서 2강에서 확보한 자유의 가능성이 여기서 현금화됩니다. "네가 마땅히 해야 한다면, 너는 할 수 있다."
반론 맛보기
살인자의 문 앞에서. 친구를 숨겨줬는데 살인자가 찾아와 행방을 묻습니다. 거짓말해도 될까요. 칸트는 악명 높게도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진실성은 완전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콩스탕과의 이 논쟁은 예외 없는 규칙 윤리의 시험대입니다. 옹호자들은 "살인자에게는 진실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재해석이나 준칙의 정교화("살인 방조를 피하기 위한 은폐" 준칙은 보편화 가능합니다)로 응수합니다.
공허한 형식주의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헤겔은 보편화 테스트가 실질 내용을 주지 못한다고 비판했고, 결과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인가 하는 물음은 공리주의(윤리학 과목)와의 200년 전쟁이 됩니다.
요청: 도덕이 여는 문
이론 이성이 닫은 문(신, 영혼불멸)을 실천 이성이 다시 엽니다. 도덕은 덕과 행복의 일치(최고선)를 명하는데, 이 세상에서 그 일치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도덕적 실천의 정합성을 위해 자유·영혼불멸·신이 요청(Postulat)됩니다.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 믿음의 자격으로 말이죠. "내 위의 별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 그의 묘비명이 두 비판서의 요약입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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