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1강. 비판철학의 구도: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인식이 대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인식을 따릅니다. 철학사의 축이 여기서 회전합니다.
풀고 시작
두 전선의 전쟁
칸트(1724~1804)는 쾨니히스베르크를 평생 떠나지 않은 규칙적인 교수였습니다. 그가 마주한 상황은 철학의 내전이었습니다. 합리론은 이성만으로 신·영혼·세계를 연역하다 독단에 빠졌고, 경험론은 정직하게 밀어붙인 끝에 인과·자아·과학의 토대를 해체해 버렸습니다(흄이 그 주인공이죠). "흄이 나를 독단의 잠에서 깨웠다." 『순수이성비판』(1781)의 과제는 이중입니다. 흄에 맞서 과학(뉴턴 물리학)의 확실성을 구제하고, 합리론에 맞서 형이상학의 월권을 재판하는 것입니다. "비판"이란 이성이 스스로의 법정에 서는 일을 말합니다.
문제의 정식화: 선험적 종합판단
칸트는 판단을 두 축으로 분류합니다.
- 분석 / 종합: 술어가 주어 개념에 포함되어 있으면 분석 판단입니다("총각은 미혼이다"). 새 정보를 더하면 종합 판단입니다("이 총각은 부자다").
- 선험적(a priori) / 후험적(a posteriori): 경험 없이 정당화되면 선험적이고, 경험이 필요하면 후험적입니다.
분석 판단은 선험적이지만 공허하고, 후험적 종합판단은 정보가 있지만 필연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수학("7+5=12")과 순수 자연과학("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은 정보를 더하면서도 필연적입니다. 즉 선험적 종합판단입니다. 흄의 포크에는 이 칸이 없었죠. 비판철학 전체의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전회: 마음이 세계의 입법자다
답의 열쇠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입니다. 인식이 대상을 수동적으로 비춘다면 선험적 필연성은 설명 불가능합니다(그렇다면 흄이 옳습니다). 그러나 대상이 경험으로 나타나려면 우리 인식의 형식을 통과해야 한다면, 그 형식에서 유래하는 것은 모든 경험에 선험적·필연적으로 타당합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빨간 안경을 벗을 수 없는 사람에게 "보이는 모든 것은 빨갛다"는 경험 이전에 확실합니다. 시공간과 인과가 바로 그런 안경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형식으로 구성된 세계를 아는 것입니다. 물론 대가가 따릅니다. 안경을 벗은 세계, 즉 물자체(Ding an sich)는 영원히 인식 밖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나타난 세계, 즉 현상입니다.
건축 설계도
『순수이성비판』의 구조는 마음의 세 능력을 따릅니다. 감성은 직관을 수용하며 시공간이라는 형식을 가집니다. 지성은 개념의 자발성으로 12범주를 작동시킵니다. 이성은 무조건자를 향해 추론하는데, 바로 여기서 형이상학의 월권과 이율배반이 발생합니다. 다음 강에서 이 설계도의 내부를 걸어 봅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결론은 이중입니다. 경험 안에서 과학은 확실합니다(흄에 대한 답입니다). 경험 밖에서 이성은 침묵해야 합니다(합리론에 대한 판결입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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