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 1강. 프레게: 언어적 전회의 시작
철학의 첫 질문이 "무엇이 존재하는가"에서 "우리의 말은 어떻게 의미를 갖는가"로 바뀌었습니다. 그 방향 전환의 손잡이를 돌린 사람이 바로 프레게입니다.
풀고 시작
논리학 2천 년의 잠을 깨우다
2천 년 동안 거의 그대로였던 학문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논리학이 그랬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큰 변화 없이 잠들어 있던 이 학문을 깨운 사람이 예나 대학의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Gottlob Frege, 1848~1925)입니다. 그의 진짜 목표는 산수를 순수 논리에서 도출하는 것, 곧 논리주의였는데, 그러려면 기존 논리학으로는 어림도 없었죠. 그래서 논리학부터 새로 만들었습니다. 1879년의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이 그 결과물입니다. 이 책은 논리학 과목 2강에서 다룬 술어논리의 원형으로, 문장을 주어와 술어가 아니라 함수와 논항으로 분석하고 양화사(quantifier)를 도입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사람이라는 주어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임의의 x에 대해, x가 사람이면 x는 죽는다"라는 구조를 갖습니다. 이 분석 덕분에 "모든 소년이 어떤 소녀를 사랑한다"류의 다중 일반성 문장, 그러니까 전통 논리가 끝내 다루지 못한 관계 추론이 처음으로 정확히 표현되었습니다. 분석철학이라는 이름의 "분석"은 바로 이 도구로 문장의 숨은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을 가리킵니다.
뜻과 지시체: 금성이 가르쳐 준 것
여기 이상한 수수께끼가 하나 있습니다. "샛별은 샛별이다"는 누구나 아는 사소한 참입니다. 그런데 "샛별은 개밥바라기다"는 바빌로니아 천문학자들이 관측으로 알아낸 어엿한 발견이죠. 이상하지 않습니까? 샛별(새벽의 금성)과 개밥바라기(저녁의 금성)는 같은 대상을 가리킵니다. 이름의 의미가 곧 가리키는 대상이라면 두 문장은 같은 것을 말해야 하는데, 인지적 가치가 명백히 다릅니다. 1892년 논문 「뜻과 지시체에 관하여」는 바로 이 동일성 문장의 수수께끼에서 출발합니다.
프레게의 해법은 의미를 두 층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지시체(Bedeutung)는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이고, 뜻(Sinn)은 그 대상이 주어지는 방식(mode of presentation)입니다. 두 이름은 지시체(금성)를 공유하지만 뜻(새벽에 보이는 가장 밝은 별, 저녁에 보이는 가장 밝은 별)이 다릅니다. 그래서 한 문장은 사소하고 다른 문장은 정보를 주는 것이죠. 문장 차원에서는 뜻이 사고(Gedanke)이고 지시체가 진리값입니다. 이 구분은 이후 언어철학 전체의 좌표가 되었고, 6강에서 크립키가 정면으로 공격하는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맥락 원리와 심리주의 비판
프레게는 1884년 『산수의 기초』 서문에서 세 가지 방법론적 원칙을 선언했습니다.
심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언제나 엄격히 구분할 것. 낱말의 의미는 고립된 낱말이 아니라 문장의 맥락 속에서 물을 것. 개념과 대상의 구분을 놓치지 말 것.
둘째가 맥락 원리입니다. 의미의 기본 단위는 낱말이 아니라 문장이며, 낱말의 의미는 문장 전체의 의미에 기여하는 역할로 규정됩니다. 낱말 하나를 놓고 "이 소리에 어떤 심상이 떠오르는가"를 묻는 순간 심리학으로 미끄러진다는 경고이기도 하죠.
첫째 원칙이 심리주의 비판입니다. 당시 유력했던 심리주의는 논리 법칙을 인간 사고의 경험적 법칙으로 보았습니다. 프레게의 반박은 단호합니다. 그렇다면 논리학은 "인간은 대체로 이렇게 생각한다"는 통계가 되고, 모순율조차 진화가 달랐다면 달라졌을 습관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2 더하기 2가 4라는 것은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참이죠. 뜻과 사고는 개인의 머릿속 표상이 아니라 모두가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것입니다. 이 반심리주의는 후설에게도 영향을 주어, 현상학 과목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영광과 붕괴, 그리고 유산
프레게의 논리주의 기획은 『산수의 근본 법칙』으로 완성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2권이 인쇄되던 1902년, 편지 한 통이 도착합니다. 보낸 사람은 러셀. 체계의 기본 법칙 5에서 모순(러셀의 역설)이 도출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평생의 기획이 인쇄기 앞에서 무너진 셈이죠. 프레게는 부록에 "학문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다. 건물을 다 지었는데 기초가 흔들렸다"고 적었습니다. 기획은 무너졌지만 도구는 살아남았습니다. 반론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뜻이라는 추상적 존재자가 정확히 무엇인지 프레게는 끝내 명확히 하지 못했고, 후대의 자연주의자들은 "제3의 영역"에 사는 객관적 사고라는 발상 자체를 신화로 의심합니다. 그럼에도 언어를 분석해 사고의 구조에 이르는 길, 곧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는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강의 주인공 러셀은 프레게의 도구를 물려받아 존재론 청소에 나섭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뜻이 심리적 표상도 물리적 대상도 아니라면, 그것은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까요? "제3의 영역"이라는 답은 설명일까요, 이름 붙이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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