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 4강. 덕윤리의 부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기 전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20세기 윤리학은 한 편의 논문으로 2천 년 전의 질문을 되찾았습니다.
풀고 시작
앤스컴의 폭탄: 현대 도덕철학
1958년, 앤스컴(G. E. M. Anscombe)은 논문 "현대 도덕철학"(Modern Moral Philosophy)에서 당대 윤리학 전체를 고발했습니다. 논지는 셋입니다. 첫째, 우리는 의도·동기·덕 같은 개념을 다룰 도덕심리학을 갖기 전까지 윤리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도덕적 의무", "도덕적으로 해야 한다" 같은 개념은 신이 입법자였던 율법 윤리의 잔재이며, 입법자를 폐기한 세속 철학이 그 개념만 계속 쓰는 것은 내용 없는 관성이라는 것이죠. 셋째, 무고한 자의 처형 같은 것을 결과에 따라 허용할 수 있다고 보는 당대 영국 윤리학(그녀가 결과주의(consequentialism)라는 말을 만들어 붙인 입장)은 타락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대안은 무엇일까요. 의무의 언어를 버리고 "정의로운", "비겁한", "정직한" 같은 두터운 덕 개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논문이 아리스토텔레스를 현대 윤리학의 경기장으로 다시 불러냈고, 풋, 맥킨타이어, 허스트하우스가 그 길을 넓혔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원
부활에 동원된 자원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장비들입니다(고대철학 6강). 삶의 최종 목적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잘 삶 또는 번영입니다. 덕(arete)은 그 번영을 구성하는 성품의 탁월성이며, 반복된 실천으로 형성되는 안정된 성향이죠. 덕은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의 중용을 상황에 맞게 맞히는 능력이고, 그 조준을 담당하는 지적 덕이 실천적 지혜(phronesis)입니다. 규칙의 기계적 적용이 아니라 상황의 유관한 특징을 알아보는 지각이 핵심이라는 점, 그리고 덕이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못박았습니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만들지 않으며, 하루가 봄을 만들지도 않는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행복도 덕도 삶 전체의 시간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허스트하우스: 유덕한 행위자 기준
덕윤리의 고전적 약점은 행위 지침입니다. "용감하라"는 말이 오늘 오후에 무엇을 하라는 말일까요. 허스트하우스(Rosalind Hursthouse)는 『덕윤리에 관하여』(1999)에서 이 물음에 정면으로 답하는 옳음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어떤 행위가 옳다는 것은, 유덕한 행위자가 그 상황에서 특징적으로(성품에 따라) 할 법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공허하지 않습니다. 각 덕과 악덕에서 덕-규칙(v-rules)이 파생되기 때문이죠. 정직하게 행위하라, 잔인하게 행위하지 말라, 인색하게 굴지 말라. 이 규칙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류의 얇은 규칙보다 풍부한 지침을 준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입니다. 물론 남는 반론도 있습니다. 유덕한 행위자를 식별하려면 이미 무엇이 덕인지 알아야 하므로 순환이 아니냐는 것이죠. 허스트하우스는 순환이 아니라 정당화의 출발점이 다를 뿐이며, 공리주의의 "좋음"과 의무론의 "이성"도 같은 구조의 출발점을 갖는다고 응수합니다.
상황주의의 도전
그런데 가장 날카로운 현대의 공격은 철학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왔습니다. 밀그램(Stanley Milgram)의 복종 실험(1963)에서 평범한 참가자의 다수가 실험자의 지시만으로 타인에게 최고 전압의 전기충격을 가하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달리와 뱃슨의 선한 사마리아인 실험(1973)에서는 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죠. 신학생들이 쓰러진 사람을 돕는가를 결정한 최대 변수가 성품도 신앙심도 아닌, 지금 서두르고 있는가라는 사소한 상황 요인이었습니다. 하먼(Gilbert Harman)과 도리스(John Doris)는 이 증거들로부터, 상황을 가로질러 안정적으로 발현되는 성격 특질이라는 것 자체가 근거 없는 통속 심리학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덕이 그런 안정적 특질이라면, 덕윤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 위에 세운 이론이라는 공격입니다.
덕윤리 진영은 어떻게 응답했을까요. 첫째,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 흔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덕은 오랜 훈련의 성취이며 드물다는 것이 원래 이론이죠. 다수가 무너졌다는 실험 결과는 덕의 부재를 보여 줄 뿐 덕의 불가능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밀그램에서도 끝까지 거부한 소수가 있었습니다). 둘째, 덕은 자극-반응 성향이 아니라 실천적 지혜를 포함한 전체적 성품이므로, 단발 행동 실험은 측정 대상을 잘못 잡았다는 것입니다. 셋째, 상황의 힘이 그토록 크다면 오히려 상황을 알아보고 경계하는 지혜가 덕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실천적 교훈이 나옵니다. 논쟁은 진행형이며, 덕윤리와 도덕심리학이 서로를 검증하는 드문 생산적 전선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유덕한 사람이 드물다면, 유덕하지 않은 우리가 "유덕한 사람이라면 할 법한 행위"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요.
- 밀그램 실험에서 끝까지 지시를 거부한 소수는 성품이 달랐던 걸까요, 상황 해석이 달랐던 걸까요. 그 둘은 구분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