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 3강. 안셀무스: 존재론적 신 존재 증명
개념 분석만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 대담한 시도입니다. 천 년째 반박되고 천 년째 부활 중입니다.
풀고 시작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안셀무스(1033~1109)는 캔터베리 대주교였고, 아우구스티누스의 강령을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으로 다듬었습니다. 『프로슬로기온』에서 그는 기도합니다. 믿음의 내용을, 믿지 않는 자도 거부할 수 없는 이성만의 논증으로 보여 달라고요. 그 결과가 철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세 문단입니다.
논증
논증은 다섯 걸음으로 갑니다.
- 신은 정의상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 「시편」의 어리석은 자도 이 정의를 이해는 합니다. 따라서 그 존재는 적어도 지성 안에 있습니다.
- 그런데 지성 안에만 있는 것보다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 더 큽니다.
- 신이 지성 안에만 있다면, "그보다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보다 큰 것(실제로도 존재하는 버전)을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모순이죠.
- 따라서 신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구조는 귀류법(논리학 3강)입니다. "신이 없다"고 가정하면 신의 정의 자체에서 모순이 터진다는 것입니다. 경험 한 조각 없이 개념에서 존재를 뽑아냅니다.
반박의 역사
어딘가 수상하죠? 그렇게 느낀 사람이 천 년간 줄을 섰습니다.
가우닐로(동시대 수도사)는 이렇게 반박합니다. 같은 논리로 "그보다 완전한 섬을 생각할 수 없는 섬"도 실존해야 합니다. 완벽한 섬 논증은 명백히 엉터리이므로 원 논증도 엉터리라는 것이죠. 안셀무스는 이렇게 응수합니다. 섬은 정의상 한계 있는 사물이라 "그보다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갈 수 없고, 이 자리는 신에게만 가능하다고요.
아퀴나스(4강)는 우리가 신의 본질을 충분히 알지 못하므로 정의에서 출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증명은 결과(세계)에서 원인(신)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칸트(결정타로 꼽힙니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존재는 술어가 아니다." 100탈러의 개념과 실제 100탈러는 내용이 같습니다. "존재한다"는 개념에 완전성을 더하는 성질이 아니라, 그 개념에 대상이 대응한다는 별개의 사실이라는 것이죠. 3번 전제("실존이 더 크다")가 무너집니다.
20세기의 부활도 있습니다.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거든요. 괴델이 논리 기호로 버전을 남겼고, 플랜팅가는 양상논리(가능세계)로 재구성했습니다. "최대로 위대한 존재가 가능하다면, 모든 가능세계에 존재하며, 따라서 현실에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논쟁의 초점은 "가능한가"라는 전제로 옮겨갔습니다.
왜 배우는가
이 논증의 가치는 결론이 아니라 부검에 있습니다. 개념과 존재의 관계, "존재"가 술어인지, 정의에서 무엇이 도출되는지. 형이상학과 논리학의 가장 깊은 문제들이 이 짧은 논증 하나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천 년 묵은 세 문단이 아직도 학술지에 오르는 이유입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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