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 1강. 아우구스티누스: 신앙과 이성, 시간과 악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가 한 사람 안에서 만납니다. 중세 천 년의 설계도가 여기서 그려집니다.
풀고 시작
회심한 철학자
성인의 대표 격인 이 사람, 사실 젊은 시절에는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수사학 교수로 출세했고, 마니교와 회의주의를 거쳐 신플라톤주의를 통해 기독교에 도달합니다(386년 회심, 『고백록』). 그 긴 우회로 끝에 그가 만든 공식이 중세 전체의 강령이 됩니다.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 신앙과 이성은 적이 아니라, 신앙이 먼저 문을 열고 이성이 그 안을 밝히는 협력 관계라는 것입니다.
악의 문제
마니교는 선의 신과 악의 신, 두 원리로 악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회심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이 길은 막혀 있습니다. 전능하고 선한 신이 만든 세계에 왜 악이 있을까요?
답은 플로티노스에게서 왔습니다. 악은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핍(privatio boni)이라는 것입니다. 신은 악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도덕적 악은 어디서 올까요? 자유의지의 오용에서 옵니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고, 자유 없는 선행은 선행이 아니므로 자유는 그 자체로 선입니다. 악은 그 선한 자유가 낮은 것을 향해 돌아선 것이죠. 이 "자유의지 신정론"은 지금도 종교철학 시험지에 오르는 표준 답안이자 표적입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고백록』 11권에 유명한 고백이 나옵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묻지 않으면 나는 안다. 묻는 자에게 설명하려면 모른다."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시간입니다.
분석은 이렇게 진행됩니다.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없으며 현재는 폭 없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놀랍게도 영혼 안에 있습니다. 과거는 기억으로, 현재는 직관으로, 미래는 기대로 존재합니다. 시간은 영혼의 늘어남(distentio animi)이라는 것이죠. 시간을 객관적 흐름이 아니라 의식의 구조로 본 이 분석은 후설의 현상학(현대철학)까지 이어지는 계보의 시작입니다.
은총과 역사
펠라기우스가 "인간은 자력으로 선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의지의 병듦과 은총의 필수성으로 맞섭니다(원죄론). 또 로마가 약탈당하자(410년) "기독교 탓"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 그는 『신국론』으로 답합니다. 역사는 지상의 나라와 신의 나라, 두 사랑의 투쟁이며 로마의 흥망은 신국의 운명과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순환하는 역사(그리스)를 직선의 역사(창조에서 종말로)로 바꾼 이 책이 서양 역사철학의 출생지입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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