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철학 4강. 논리실증주의: 검증과 형이상학 제거
문장의 의미는 그것을 검증하는 방법입니다. 검증할 길이 없는 문장은 거짓이 아니라 무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원리 자체는 검증 가능할까요?
풀고 시작
비엔나 서클: 과학의 시대, 철학의 청소
1920년대 빈의 어느 목요일 저녁, 한 세미나실에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가 모여 앉습니다. 슐리크(Moritz Schlick)를 중심으로 카르납(Rudolf Carnap), 노이라트(Otto Neurath), 괴델 등이 모인 이 목요 세미나가 비엔나 서클(Vienna Circle)입니다. 이들은 흄의 경험론과 프레게-러셀의 새 논리학,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보여준 과학의 성공을 결합해 "과학적 세계관"을 선언했습니다(1929년 선언문). 지식의 원천은 흄의 포크 그대로 둘뿐입니다. 논리와 수학의 분석 명제(참이 오직 의미에 의해 결정됨), 그리고 경험으로 시험되는 종합 명제죠. 경험론 3강에서 흄이 "갈퀴에 걸리지 않는 책은 불태워라"라고 했던 그 갈퀴를, 이들은 현대 논리학으로 벼려 다시 들었습니다. 이들은 논고를 경전처럼 강독했지만, 앞 강에서 본 대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경외라는 논고의 결론부는 잘라내고 한계 긋기의 칼만 취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본인이 이 독해에 불쾌해한 이유입니다.
검증 원리: 의미는 검증 방법이다
서클의 무기가 검증 원리(verification principle)입니다. 슐리크의 정식화로, 문장의 의미는 그 검증의 방법입니다. 어떤 문장이 인지적으로 유의미하려면 분석 명제이거나, 아니면 어떤 가능한 경험이 그 참거짓과 관련되는지를 원리상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달 뒷면에 산이 있다"는 1930년대에 아무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검증 방법을 기술할 수 있으므로 유의미합니다. 반면 "무 자체가 무화한다"(카르납이 하이데거에게서 뽑아 든 표적 문장)는 어떤 관찰과도 연결될 수 없으므로 무의미합니다.
이것이 형이상학 제거 프로그램입니다. 카르납은 1932년 논문 「언어의 논리적 분석을 통한 형이상학의 극복」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형이상학의 명제들은 거짓이 아니다. 그것들은 참도 거짓도 아닌,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 사이비 문장이다. 형이상학자는 이론의 옷을 입은 예술가, 음악적 재능 없는 음악가다.
거짓이라는 판정조차 과분하다는 것, 반박이 아니라 해소한다는 것이 전략의 핵심입니다. 형이상학은 삶의 감정 표현으로서는 존중받을 수 있으나 지식 주장으로서는 자격 미달이라는 것이죠. 에이어(A. J. Ayer)의 『언어, 진리, 논리』(1936)는 이 프로그램을 영어권에 수출했고, 같은 논리로 윤리 문장을 감정 표현으로 분석하는 정서주의(emotivism)까지 밀고 갔습니다.
균열 1: 프로토콜 문장 논쟁
그런데 내부에서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경험이 지식의 토대라면, 그 토대가 되는 최초의 관찰 보고, 곧 프로토콜 문장(protocol sentence)은 무엇에 관한 것일까요? 이 물음에서 서클이 갈라졌습니다. 슐리크는 "지금 여기 빨강" 같은 주관적 체험 보고가 흔들리지 않는 토대라고 보았습니다(정초주의). 노이라트는 반박했죠. 사적 체험 보고는 과학의 상호주관적 언어에 들어올 수 없으며, 프로토콜 문장도 물리적 사건을 기술하는 수정 가능한 문장일 뿐이라는 겁니다. 어떤 문장도 특권적 토대가 아니고, 문장은 오직 다른 문장들과의 정합으로 시험됩니다. 그의 비유가 유명합니다.
우리는 배를 부두에서 해체해 최상의 부품으로 다시 지을 수 없고, 망망대해 위에서 고쳐 가며 항해해야 하는 선원과 같다.
이 논쟁은 단순한 내분이 아닙니다. 경험주의의 토대 자체가 이론에 물들어 있다는 자백이며, 노이라트의 배는 6강에서 콰인의 전체론으로 이어지는 복선입니다.
균열 2: 자멸 문제와 유산
더 아픈 균열은 자기지시입니다. 검증 원리 자체는 분석 명제일까요,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할까요? 분석 명제라면 낱말 뜻풀이에 불과해 형이상학자를 구속할 힘이 없고, 종합 명제라면 어떤 관찰이 이 원리를 검증하는지 말할 수 없습니다. 원리는 자신의 기준으로 무의미해집니다. 에이어는 원리를 정의 내지 방법론적 제안으로 격하하며 방어했지만, 제안이라면 거부하면 그만이라는 반문이 따라붙습니다. 여기에 기술적 난점도 겹쳤습니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 같은 보편 법칙은 유한한 관찰로 결코 완전히 검증되지 않습니다. 검증을 "약한 검증"(관련 관찰 가능성)으로 완화하면 이번에는 거의 아무 문장이나 통과했죠. 포퍼는 아예 검증 대신 반증 가능성을 과학과 비과학의 구획 기준으로 제안했습니다(과학철학 과목에서 상세히 다룹니다).
1936년 슐리크가 빈 대학 계단에서 피살되고 나치를 피해 회원들이 미국으로 흩어지며 서클은 해체됐습니다. 운동으로서 논리실증주의는 실패했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러나 유산은 큽니다. 명료성의 기준, 논리적 분석이라는 방법, 과학철학이라는 분과 자체가 이들의 산물이고, 그 계승자이자 파괴자인 콰인(6강)도 이 토양에서 자랐습니다. 실패조차 정확하게 실패해서 후대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려 준 드문 사례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유의미성의 기준"을 제시하는 모든 이론은 그 기준 자체의 지위를 설명해야 하는 자기지시 문제를 피할 수 없을까요? 피할 수 있는 형태의 기준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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