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론 2강. 버클리: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물질은 없습니다. 미친 소리 같지만 반박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경험론의 칼이 물질을 베었습니다.
풀고 시작
로크의 폭탄을 터뜨리다
버클리(1685~1753)는 아일랜드의 성직자였습니다. 그가 로크의 구도에서 본 것은 치명적인 틈이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아는 것은 관념뿐인데, 그 너머에 물질 실체가 있다니요. 관념 너머의 물질은 정의상 지각 불가능한데, 경험론자가 어떻게 그 존재를 주장할 수 있을까요. 로크 자신의 규칙("모든 관념의 출처를 경험에서 대라")을 적용하면 물질 실체는 출처 불명이 됩니다.
버클리의 해법은 과감합니다. 그 "너머"를 아예 지워 버리는 것입니다. 사물은 관념들의 다발이고,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입니다. 체리는 붉음·단맛·둥긂이라는 지각들의 묶음이지, 그 배후에 숨은 알 수 없는 기체가 아닙니다.
논증들
첫째, 제1성질도 제2성질과 같은 배를 탑니다. 로크는 색·맛(제2성질)만 정신 의존적이라 했지만, 연장·모양·운동(제1성질)도 사정은 똑같습니다. 크기는 보는 거리마다 다르고, 빠름은 기준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색 없는 연장을 지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모양은 언제나 색과 함께 옵니다. 제2성질이 정신 안에 있다면 제1성질도 함께 들어옵니다.
둘째, 추상관념 비판입니다. "삼각형 일반", 그러니까 직각도 예각도 아니면서 삼각형인 것을 마음에 떠올릴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특정 삼각형입니다. 추상적 물질 개념도 같은 허구라는 것이죠.
셋째, 지각 불가능한 것의 상상 불가능성입니다. "아무도 지각하지 않는 나무"를 상상해 보세요. 그 순간 당신이 그 나무를 마음에 떠올렸습니다. 지각 밖의 존재를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가 지각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럼 왜 세계는 멋대로 안 되는가
관념뿐이라면 내가 눈을 감으면 책상은 사라질까요. 내 상상과 실제 지각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버클리의 답이 여기서 나옵니다. 실제 세계의 관념들은 내가 만들지 않습니다. 더 큰 정신, 즉 신이 항상 지각하고 있으며, 규칙적 질서에 따라 우리에게 관념을 줍니다(자연법칙이란 신의 관념 제시 규칙입니다). 눈을 감아도 책상이 유지되는 것은 신이 계속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유물론이 무신론으로 가는 길을 막으려던 성직자에게, 신은 세계의 지속성 그 자체가 된 셈입니다.
존슨 박사는 돌을 걷어차며 "이렇게 반박한다!"고 외쳤지만, 이것은 반박이 되지 못합니다. 발의 아픔과 돌의 단단함 역시 지각이니까요. 버클리 체계 안에서 완벽히 예측되는 경험입니다. 그의 체계는 내적으로 정합적이고, 그래서 더 곤혹스럽습니다.
유산
버클리 관념론 자체를 받아들인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나 그가 벼린 칼, 즉 "지각 불가능한 것의 존재 주장은 무의미하다"는 원칙은 흄의 회의주의, 칸트의 물자체 논쟁, 20세기 현상주의와 검증주의로 이어졌습니다. 경험론의 원리를 끝까지 밀면 어디에 도달하는지 보여준 사고실험의 완성판이라 할 만합니다. 다음 강에서는 흄이 같은 칼로 인과와 자아마저 벱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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