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 1강. 지식이란 무엇인가: 게티어 문제
2000년 묵은 지식의 정의가 세 쪽짜리 논문에 무너집니다. 철학이 일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교과서적 장면입니다.
풀고 시작
표준 분석: JTB
"안다"는 게 뭘까요?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이래 철학은 꽤 그럴듯한 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S가 P를 안다는 것은,
- P가 참이고 (truth)
- S가 P를 믿으며 (belief)
- 그 믿음이 정당화되어 있다 (justification)
이 세 조건의 결합, 즉 정당화된 참인 믿음(JTB)이라는 답입니다. 참 조건은 "거짓을 알 수는 없다"를 걸러내고, 믿음 조건은 "믿지도 않는 것을 알 수는 없다"를 걸러내고, 정당화 조건은 "운 좋은 추측은 지식이 아니다"를 걸러냅니다. 2000년간 이 분석은 대체로 무사했습니다. 그런데 1963년, 무명의 철학자가 쓴 세 쪽짜리 논문이 등장합니다.
1963년, 세 쪽짜리 지진
에드먼드 게티어의 논문 「정당화된 참인 믿음은 지식인가?」는 반례 딱 두 개로 이 정의를 무너뜨렸습니다. 구조를 보시죠.
사례: 스미스는 강력한 증거를 근거로 "존스가 취직할 것이고, 존스의 주머니에 동전이 10개 있다"를 정당하게 믿습니다. 여기서 그는 "취직할 사람의 주머니에 동전이 10개 있다"를 연역합니다(정당화는 타당한 연역으로 보존됩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취직한 것은 스미스 자신이고, 우연히 그의 주머니에도 동전이 10개 있었던 겁니다. 결론 믿음은 참이고, 정당화됐습니다. 그러나 지식일까요? 아니라는 직관이 압도적입니다. 참이 된 경로가 정당화의 경로와 어긋난 채 운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죠.
반례 제조 공식은 이렇습니다. 정당화되었지만 거짓인 믿음에서 출발해, 우연히 참인 결론에 도달하게 하라. 이 공식 하나로 JTB 세 조건을 다 충족하면서도 지식은 아닌 사례가 양산됩니다.
수리 시도들
철학자들은 당연히 정의를 고치려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고칠 때마다 새는 곳이 생깁니다.
- 오류 불가능주의는 정당화 기준을 "거짓일 수 없음"까지 올립니다. 대가가 큽니다. 일상 지식이 거의 다 지식이 아니게 됩니다(회의주의행 급행열차죠).
- 거짓 전제 배제는 추론 사슬에 거짓 전제가 없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전제 추론 없이 발생하는 게티어형 사례(헛간 모형만 즐비한 마을에서 우연히 진짜 헛간을 본 경우)를 막지 못합니다.
- 인과 이론은 사실 자체가 믿음의 원인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인과가 불분명한 수학·일반화 지식에는 적용이 곤란해집니다.
- 민감성/안전성 조건은 "P가 거짓이었다면 믿지 않았을 것"(민감성), "그렇게 믿은 방식으로는 쉽게 거짓일 수 없었을 것"(안전성) 같은 양상 조건을 추가합니다. 현재까지 가장 활발한 노선이지만 각자 반례를 안고 있습니다.
- 지식 우선주의(윌리엄슨)는 발상 자체를 뒤집습니다. 지식은 분석되는 합성물이 아니라 원초 개념이며, 오히려 믿음·정당화가 지식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60년째 만장일치 승자가 없습니다. 그러면 실패의 역사일까요? 아닙니다. 인식적 운, 정당화의 구조, 양상 조건 같은 정밀 도구들이 바로 이 논쟁에서 벼려졌습니다. 반례 하나가 개념의 지도를 다시 그리게 하는 것, 논리학 강의에서 봤던 철학의 엔진이 실시간으로 도는 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