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과 현대 2강. 제국의 해체, 제3세계의 탄생
1945년 유엔 창립 회원국은 51개국이었습니다. 오늘날은 190개국이 넘습니다. 그 차이의 대부분이 제국의 잔해에서 태어난 나라들입니다.
풀고 시작
소금 한 줌으로 제국을 흔든 사람
1930년 3월, 61세의 간디가 지팡이를 짚고 걷기 시작합니다. 목적지는 바다, 목적은 소금이었습니다. 영국이 소금 생산을 독점하고 세금을 매기자, 간디는 24일을 걸어 단디 해안에 도착해 바닷물이 마른 갯벌의 소금을 한 줌 집어 들었습니다. 법을 어긴 것이죠. 이 소금 행진은 비폭력 불복종(사티아그라하)이 어떻게 제국의 도덕적 권위를 무너뜨리는지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습니다. 총을 든 제국은 총을 든 반란을 진압할 수 있지만, 맞지 않고 걷기만 하는 수만 명 앞에서는 폭력 자체가 자신의 정당성을 갉아먹었으니까요. 2차 대전으로 기력이 소진된 영국은 1947년 인도에서 철수합니다. 그러나 독립은 축제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할(Partition) 과정에서 힌두·무슬림 간 폭력으로 막대한 인명이 희생됐고 천만 명 이상이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간디 자신도 1948년 1월 힌두 극단주의자의 총에 쓰러졌죠.
아프리카의 해, 그리고 반둥의 목소리
인도가 문을 열자 둑이 터졌습니다. 1957년 가나가 은크루마의 지도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식민지 중 앞서서 독립했고, 1960년에는 나이지리아, 세네갈, 콩고 등 무려 17개국이 한 해에 독립해 이 해는 아프리카의 해로 불립니다. 다만 모든 독립이 평화롭게 온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본토의 일부로 여겨 놓아주지 않으려 했고,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이어진 알제리 전쟁은 막대한 희생 끝에야 독립으로 귀결됐습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얻은 독립과 총구 앞에서 쟁취한 독립이 나란히 있었던 것이죠. 신생 독립국들은 곧 질문에 부딪힙니다. 미국 편에 설 것인가, 소련 편에 설 것인가.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 대표가 모여 제3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반식민주의와 평화 공존을 내건 반둥 회의입니다. 이 흐름은 1961년 베오그라드에서 인도의 네루, 이집트의 나세르,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등이 주도한 비동맹 운동(Non-Aligned Movement)으로 조직화됐죠.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이 나라들을 묶어 부른 말이 제3세계였습니다. 물론 현실은 선언만큼 깔끔하지 않아서, 비동맹을 표방한 나라들도 원조와 무기를 놓고 양 진영 사이를 오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기가 바뀌어도 남는 것들
독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첫 번째 유산은 지도 위의 직선들입니다. 1884년 베를린 회담 이래 유럽 열강은 현지의 민족·언어·종교 분포를 무시하고 자를 대고 국경을 그었습니다. 신생국들은 이 인위적 국경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한 나라 안에 적대적 집단이 묶이거나 한 민족이 여러 나라로 찢기면서 내전과 분쟁의 씨앗이 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두 번째는 경제 구조입니다. 정치적 독립 후에도 옛 종주국과 다국적 기업이 원자재 수출 의존 구조와 차관을 통해 실질적 지배력을 유지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가나의 초대 대통령 은크루마는 이를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다만 이 개념을 둘러싼 논쟁도 소개해야 공정합니다. 저발전의 원인을 외부 착취 구조에서 찾는 종속이론에 맞서, 국내 제도와 정책 선택의 차이를 강조하는 반론도 유력합니다. 같은 조건에서 출발한 나라들의 경로가 크게 갈린 사례들이 이 논쟁을 계속 살아 있게 하죠. 1956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위기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군사 개입에 나섰다가 미소 양국의 압력으로 물러난 사건은, 옛 제국의 시대가 저물고 새 질서가 왔음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습니다. 다음 강에서는 그 새 질서의 한 축, 소련이 무너지는 밤으로 갑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식민 지배가 남긴 인위적 국경을 독립 이후에라도 다시 그었어야 했을까요. 국경 재조정이 가져올 혼란과, 잘못 그어진 국경을 안고 사는 비용 중 어느 쪽이 더 컸을지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