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고대 4강. 로마 제국: 지중해를 하나로
아우구스투스의 천재성은 왕이 되는 법이 아니라, 왕이면서 왕이 아닌 척하는 법을 알았다는 데 있습니다.
풀고 시작
공화정의 탈을 쓴 제정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는 내전의 최종 승자가 된 뒤, 양아버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카이사르는 왕처럼 보여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27년 원로원에 "공화정을 돌려드린다"고 선언하는 연극을 펼치고,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칭호로 화답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황제가 아니라 프린켑스(princeps), 즉 "시민 중 제1인자"로 불렀습니다. 집정관도 원로원도 민회도 그대로 남았지만, 군대의 통수권과 주요 속주의 지배권, 호민관의 권한이 모두 한 사람에게 모였습니다. 이 체제를 원수정(principatus)이라 부릅니다. 겉은 공화정, 속은 군주정인 이 절묘한 위장 덕에 아우구스투스는 40년 넘게 통치하고 침대에서 죽는 데 성공했고, 지중해 세계는 약 200년의 안정기, 이른바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들어섭니다.
팍스 로마나의 실체: 도로, 법, 시민권
로마의 평화는 감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세 가지 하부구조 위에 서 있었습니다. 첫째는 도로입니다. 제국 전역에 뻗은 포장 간선도로가 8만 킬로미터에 달했다고 추정되며, 군단과 상인과 문서가 같은 길로 움직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은유이기 전에 토목의 사실이었죠. 둘째는 법입니다. 로마인은 시민 간의 법과 별도로 이민족에게도 적용되는 만민법(ius gentium)의 관념을 발전시켰고, 로마법은 훗날 유럽 대륙법 체계의 뿌리가 됩니다. 셋째가 가장 흥미로운 시민권입니다. 로마는 정복지 엘리트에게 시민권을 단계적으로 열어 주는 방식으로 피정복민을 체제의 지분 보유자로 만들었습니다. 속주 출신 황제까지 나왔고, 서기 212년 카라칼라 칙령은 제국의 거의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합니다. 물론 이 평화의 이면도 봐야 합니다. 노예제 위에 선 번영이었고, 정복 전쟁의 폭력이 잦아든 것일 뿐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브리타니아의 저항 지도자를 두고 타키투스가 남긴 "그들은 폐허를 만들고 그것을 평화라 부른다"는 문장은 로마인 스스로 기록한 자기 비판입니다.
3세기의 위기와 제국의 재편
서기 235년부터 약 50년간 제국은 무너지기 직전까지 갑니다. 군대가 황제를 만들고 죽이기를 반복해 이 기간에 20명이 넘는 황제가 난립했고, 국경에서는 게르만족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압박이 거세졌으며, 화폐의 은 함량이 떨어지며 물가가 치솟았습니다. 갈리아와 팔미라에서는 제국에서 떨어져 나간 분리 정권까지 등장했죠. 이 위기를 수습한 것이 284년 즉위한 디오클레티아누스입니다. 그는 제국이 한 사람이 다스리기에 너무 크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두 명의 정제와 두 명의 부제가 분할 통치하는 사두정치를 시도했고, 원수정의 위장을 벗어던진 노골적 전제정으로 체제를 바꿉니다. 뒤이은 콘스탄티누스는 330년 동방에 새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세웠고, 395년 테오도시우스 사후 제국은 동서로 사실상 갈라져 다시 합쳐지지 않습니다.
서로마는 왜 멸망했는가: 단일 원인은 없다
476년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의 어린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합니다. 흔히 서로마 멸망의 해로 꼽히는 사건이지만, 당시에는 세계의 종말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동로마 제국은 이후로도 천 년을 더 갑니다. 원인 논쟁은 역사학의 영원한 떡밥입니다. 18세기 기번은 기독교와 야만족을 지목했고, 이후 학자들이 제시한 원인을 한 연구자가 세어 보니 210개가 넘었습니다. 재정 파탄, 역병, 기후 변동, 게르만족의 이동과 훈족의 압박, 군대의 야만족화, 엘리트의 책임 회피까지. 현대 학계의 논쟁 구도는 크게 둘입니다. 한쪽은 이 시기를 파국적 몰락으로 보고, 다른 쪽은 로마 세계가 게르만 왕국들로 점진적으로 변형된 과정으로 봅니다. 확실한 것은 단일 원인 서사는 모두 틀렸다는 것, 그리고 무너진 것은 서쪽의 정치 체제였지 로마의 법, 언어, 종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종교는 제국보다 오래 살아남아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것이 다음 강의 이야기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실권과 명분을 분리한 아우구스투스식 통치는 현대 정치에도 존재할까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 어떤 체제의 "멸망"을 선언하려면 무엇이 끝나야 할까요? 정치 기구, 문화, 아니면 사람들의 자기 인식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