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2강. 송: 근대를 앞당겨 산 왕조
세계 최초의 지폐, 인구 1억, 화약과 나침반과 인쇄술. 송은 근대의 재료를 다 갖고도 근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풀고 시작
군인이 세운, 군인을 불신한 왕조
당 말의 혼란을 끝낸 사람은 절도사 출신 조광윤입니다. 그는 960년 부하들에게 황포를 입혀지는 형식으로 추대되어 송을 세웠는데, 자신이 그렇게 집권했기에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개국 공신 장군들을 연회에 불러 병권을 스스로 내놓게 했다는 배주석병권 일화가 전해집니다. 송은 절도사의 권한을 회수하고 문관이 군을 통제하는 문치주의를 국시로 삼았습니다. 이 선택은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내부 쿠데타는 사라졌지만, 북방의 거란(요)과 여진(금) 앞에서 군사적으로 늘 열세였습니다. 1004년 전연의 맹약으로 송은 요에 매년 비단과 은을 보내는 조건으로 평화를 샀습니다. 굴욕으로 보이지만, 전쟁 비용보다 훨씬 쌌다는 재평가도 있습니다.
상업혁명: 지폐, 시장, 인구 1억
평화를 산 대가로 송의 경제는 폭발했습니다. 참파 벼라는 조생종 도입으로 강남에서 이모작이 가능해지자 인구가 북송 대에 1억 명 수준으로 불어났습니다. 한과 당의 전성기 인구를 훌쩍 넘는 규모입니다. 당의 장안이 관청이 시장의 위치와 개장 시간을 통제하는 도시였다면, 송의 개봉과 항주는 야시장이 새벽까지 돌아가는 상업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사천에서 세계 최초의 지폐 교자가 등장합니다. 무거운 철전 대신 예탁 증서를 주고받던 상인들의 관행을 정부가 공인한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이 이 시대를 상업혁명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일본의 동양사학자 나이토 고난은 당과 송 사이에 귀족 사회에서 서민과 군주의 시대로 넘어가는 대전환이 있었다는 당송변혁론을 제기했고, 송을 어디까지 "근세"로 볼 것인가는 지금도 논쟁 중입니다.
세계를 바꾼 세 가지 발명
훗날 프랜시스 베이컨은 세계의 모습을 바꾼 발명으로 인쇄술, 화약, 나침반을 꼽았습니다. 셋 다 중국에서 나왔고, 셋 다 송대에 실용화됐습니다. 화약은 불로장생 약을 찾던 연단술의 부산물로 등장해 송대에 무기가 됐습니다. 나침반은 송대부터 항해에 쓰였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훗날 대항해시대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인쇄술은 목판을 넘어 11세기 필승이 흙을 구운 활자로 활판 인쇄를 시도한 기록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파급의 비대칭입니다. 세 발명은 유라시아를 건너간 뒤 유럽에서 종교개혁(인쇄술), 기사 계급의 몰락(화약), 신항로 개척(나침반)이라는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발명한 곳과 그 발명으로 세계를 바꾼 곳이 달랐던 셈입니다. 이 물음은 4강의 대분기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사대부와 성리학, 그리고 역설
송은 과거제를 사실상 완성했습니다. 시험을 3단계로 정비하고 답안의 이름을 가리는 방식까지 도입해, 시험으로 선발된 사대부가 귀족을 대신하는 지배층이 됩니다. 이들의 철학이 주희(1130~1200)가 집대성한 성리학입니다. 우주의 원리(리)와 인간의 본성을 하나의 체계로 묶은 이 학문은 이후 조선과 일본까지 동아시아의 표준 교학이 됩니다. 그러나 번영은 군사력을 사 주지 못했습니다. 1127년 여진의 금이 개봉을 함락하고 두 황제를 포로로 잡아간 정강의 변으로 북송이 무너졌고, 남쪽으로 옮긴 남송도 1279년 몽골에 멸망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군사적으로는 가장 시달린 나라였다는 이 역설은, 부와 힘이 자동으로 교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몽골의 이야기가 다음 강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송은 지폐, 거대 시장, 활판 인쇄까지 갖추고도 산업혁명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부족했던 것은 기술이었을까요, 제도였을까요, 아니면 그저 시간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