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고대 5강. 제국의 변방에서 세계 종교로
로마가 십자가에 매단 변방 속주의 사형수가, 결국 로마 황제를 무릎 꿇게 했습니다. 세계사에서 이보다 극적인 역전은 드뭅니다.
풀고 시작
한 신만 섬기는 사람들
로마 제국의 종교 정책은 기본적으로 관대했습니다. 정복지의 신들을 로마의 만신전에 편입하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시스템과 끝내 화해하지 못한 민족이 있었습니다. 유일신 야훼만을 섬기는 유대인입니다. 유대교는 단순한 일신 숭배를 넘어, 역사를 신의 계획으로 읽는 독특한 세계관을 발전시켰습니다. 바빌론 유수 같은 민족적 파국을 겪으며 "언젠가 기름 부음 받은 구원자, 즉 메시아가 온다"는 대망이 자라났고, 로마 지배기의 팔레스타인은 이 기대로 끓고 있었습니다. 서기 30년 무렵, 나사렛 출신의 예수가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신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포하다 로마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에 의해 십자가형을 받습니다. 십자가형은 반역자와 노예에게 내리는 가장 치욕적인 처형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그는 로마 기록의 각주로도 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민족 종교의 껍질을 깨다
죽은 스승이 부활했다는 제자들의 확신에서 새 운동이 시작됩니다. 결정적 전환은 바울이라는 인물이 만들었습니다. 그리스어를 쓰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이었던 바울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유대 율법의 준수 없이도 이방인을 구원한다고 선언합니다. 할례와 음식 규정이라는 진입 장벽이 사라지자, 유대인의 메시아 신앙은 민족의 울타리를 넘는 보편 종교로 변모합니다.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노예도 자유인도 없다"는 바울의 선언은 폴리스와 신분과 종족으로 사람을 나누던 고대 세계에서 혁명적인 문장이었습니다. 전파의 통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로마 제국 자체였습니다. 지난 강에서 본 제국의 도로망, 지중해 해운, 그리고 헬레니즘이 남긴 공통어 코이네 그리스어를 타고 교회는 도시에서 도시로 퍼졌습니다. 신약성서가 코이네로 쓰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박해에서 국교까지
로마는 처음에 기독교를 유대교의 분파 정도로 여겼지만, 황제 숭배와 국가 제사를 거부하는 태도가 문제가 됩니다. 64년 네로가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도에게 돌린 이래 박해가 간헐적으로 이어졌고,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박해가 마지막이자 가장 조직적인 탄압이었습니다. 그런데 박해는 실패했습니다. 순교자의 죽음은 오히려 신앙의 광고가 됐고, 역병과 위기의 3세기 동안 신자들의 상호 부조 공동체는 제국의 어떤 조직보다 강한 결속을 보여 줬습니다. 반전은 정치에서 옵니다. 312년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이듬해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325년에는 니케아 공의회를 직접 소집해 교리 통일까지 주관합니다. 그리고 380년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사실상 국교로 선언하고 이후 이교 제사를 금지하면서, 박해받던 종교는 두 세기 반 만에 박해할 수 있는 종교가 됐습니다. 황제들의 동기가 신앙이었는지 제국 통합의 도구였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지만, 결과는 분명합니다. 서로마의 정치 체제가 무너진 뒤에도 교회는 살아남아 다음 시대 유럽의 뼈대가 됩니다.
불교라는 평행 사례
같은 시기 유라시아 반대편에서도 놀랍도록 닮은 일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무렵 인도에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창시한 불교는, 카스트와 무관하게 누구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며 브라만교의 신분 질서를 상대화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제국의 아소카 왕이 불교를 후원하며 각지에 전법사를 보냈고, 이후 불교는 실크로드 상인들을 따라 중앙아시아를 거쳐 한나라 시기의 중국으로 전해집니다. 제국의 교역망을 타고 퍼졌다는 점, 출신과 신분을 묻지 않는 구원을 내걸었다는 점, 국가 권력의 후원이 결정적 도약대가 됐다는 점까지 기독교와 구조가 겹칩니다. 민족과 도시의 신을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를 향해 말하는 보편 종교의 등장은, 고대 세계가 폴리스와 부족의 시대에서 문명권의 시대로 넘어가는 세계사적 전환이었습니다. 불교가 도착한 그 중국에서는 마침 또 하나의 거대한 제국 실험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다음 과목에서 진나라와 한나라의 이야기로 이어 갑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그래도 유럽의 지배 종교가 됐을까요? 종교의 성패에서 권력의 후원은 얼마나 결정적일까요?
- "누구에게나 열린 구원"이라는 보편 종교의 약속은 왜 하필 거대 제국의 시대에 등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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