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4강. 흑사병: 유럽을 바꾼 팬데믹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데려간 역병은, 역설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에게 협상력과 새 시대를 남겼습니다.
풀고 시작
1347년, 배가 실어 온 죽음
1347년 가을, 흑해 연안에서 출발한 제노바 상선들이 시칠리아 메시나 항에 들어왔을 때, 노잡이들 상당수는 이미 죽어 있거나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검은 멍울을 달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1강의 실크로드와 3강의 지중해 교역망, 유럽을 부유하게 만든 바로 그 연결망을 타고 페스트균이 도착한 것입니다. 역병은 항구에서 항구로, 길을 따라 마을로 번졌고 1351년 무렵까지 유럽 대부분을 휩쓸었습니다. 사망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럽 인구의 대략 3분의 1에서 절반이 죽었다는 추정이 일반적입니다(지역 편차는 컸습니다). 원인을 알 리 없던 사람들의 반응은 극단으로 갈렸습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행진한 고행단이 나타났고,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 속에 라인란트 등지에서 유대인 공동체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교황 클레멘스 6세가 유대인을 보호하라는 교서를 냈지만 광기를 다 막지는 못했습니다.
시체가 바꾼 임금, 무너지는 장원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지면 경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토지는 그대로인데 일손이 귀해졌으니, 살아남은 농민과 직인의 몸값이 뛰었습니다. 영주들은 도망 농노를 잡으러 다니는 대신 지대를 깎아 주고 부역을 돈으로 바꿔 주며 사람을 붙잡아야 했습니다. 지배층은 법으로 시계를 되돌리려 했습니다. 잉글랜드의 노동자 법령(1351)은 임금을 역병 이전 수준으로 동결하려 했죠. 결과는 반발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자크리 농민반란(1358), 그리고 잉글랜드의 와트 타일러 난(1381)이 터졌습니다. 와트 타일러 난에서 설교자 존 볼이 던진 "아담이 밭 갈고 이브가 길쌈할 때 귀족은 어디 있었는가"라는 물음은 신분제 자체를 겨눈 것이었습니다. 반란들은 진압되었지만 흐름은 되돌려지지 않았고, 서유럽의 농노제와 장원 경제는 15세기를 지나며 사실상 해체의 길로 들어섭니다. 1강에서 본 중세의 경제적 골격이 무너진 것입니다.
흔들리는 교회, 갈라지는 교황
역병 앞에서 교회는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성직자들도 똑같이 죽어 나갔고(병자를 돌보다 죽은 이들과 도망친 이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기도로도 막지 못하는 재앙"의 경험은 교회의 권위에 조용한 균열을 냈습니다. 하필 교회 스스로도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교황청은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로마를 떠나 프랑스 아비뇽에 머물렀고(아비뇽 유수), 로마 귀환 직후인 1378년부터는 로마와 아비뇽에 교황이 동시에 둘(한때는 셋) 서는 교회 대분열(1378~1417)이 이어졌습니다. 서로를 파문하는 교황들을 지켜보며, 위클리프와 후스 같은 개혁 요구가 자라났습니다. 2강에서 본 카노사의 절정과 비교하면, 교황권의 낙차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마른 장작이 이때부터 쌓이기 시작한 셈입니다.
전쟁이 만든 "우리": 국민국가의 맹아
같은 시기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백년전쟁(1337~1453)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왕위 계승권과 프랑스 내 잉글랜드령을 둘러싼 이 긴 전쟁은 봉건 전쟁으로 시작해 다른 것으로 끝났습니다. 장궁병이 기사를 쏘아 떨어뜨리고(크레시, 아쟁쿠르) 대포가 성벽을 무너뜨리면서 기사 계급의 군사적 우위가 저물었고, 상비군과 전쟁 세금을 운영하는 국왕의 권력이 자랐습니다. 그리고 농민의 딸 잔 다르크가 "프랑스"를 위해 싸우다 1431년 화형당하는 장면이 상징하듯, 전쟁은 "잉글랜드인"과 "프랑스인"이라는 소속감을 벼려냈습니다. 다만 이것을 곧바로 근대 민족주의로 읽는 것은 과장이며, 역사가들은 어디까지나 국민국가의 맹아, 씨앗으로 평가합니다. 네덜란드 역사가 하위징아는 이 시대를 "중세의 가을"이라 불렀습니다. 낙엽 아래에서 다음 계절, 르네상스와 근대가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 우리는 시선을 돌려, 같은 중세에 유럽보다 화려하게 번영한 다른 세계를 만나러 갑니다. 이슬람 세계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팬데믹이 기존 질서의 약한 고리를 드러내고 노동의 협상력을 바꾸는 패턴은 21세기의 팬데믹에서도 관찰되었을까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달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