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과 현대 1강. 총성 없는 3차 대전
미국과 소련은 45년 동안 단 한 발도 서로에게 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구 전체를 체스판으로 썼습니다.
풀고 시작
동맹은 어떻게 적이 되는가
1945년 2월, 크림 반도의 휴양지 얄타에 세 사람이 모입니다.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 나치 독일의 패망이 눈앞에 온 시점에서 이들은 전후 세계의 설계도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설계도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균열이 벌어집니다. 소련은 동유럽에 친소 정권을 세워 완충지대를 만들었고, 서방은 이를 팽창으로 읽었습니다. 1946년 처칠은 미국 풀턴에서 "발트해에서 아드리아해까지 철의 장막(Iron Curtain)이 드리워졌다"고 선언합니다. 같은 해 모스크바 주재 외교관 조지 케넌은 장문의 전보에서 소련을 무력이 아니라 인내로 눌러야 한다는 봉쇄 정책(containment)을 제안했죠. 1947년 트루먼 독트린과 마셜 플랜이 그 실행판이었습니다. 첫 정면 대치는 베를린에서 왔습니다. 1948년 소련이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육로를 봉쇄하자, 서방은 전쟁 대신 하늘을 택했습니다. 약 11개월 동안 수십만 회의 수송기 비행으로 석탄과 식량을 실어 나른 베를린 공수입니다. 결국 소련이 1949년 봉쇄를 풀었고, 같은 해 서방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출범시켰습니다. 유럽은 그렇게 두 진영으로 굳어졌죠.
대리전: 한반도와 베트남
직접 싸울 수 없다면 어디서 싸울까요. 답은 남의 땅이었습니다. 1950년 한반도에서 냉전 최초의 대규모 열전이 터집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유엔군과 중국군까지 뛰어든 국제전이 됐고, 1953년 휴전선이 그어질 때까지 수백만 명이 희생됐습니다. 전선은 원점 근처로 돌아왔지만, 냉전이 언제든 열전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죠. 베트남에서는 프랑스 철수 이후 미국이 개입해 1960년대와 70년대 초까지 긴 전쟁을 치렀지만, 1975년 사이공 함락으로 막을 내립니다. 초강대국이 국지전에서 이기지 못할 수 있다는 교훈은 양 진영 모두에게 충격이었습니다.
13일: 인류가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간 순간
1962년 10월, 미국 정찰기가 쿠바에서 소련 핵미사일 기지 건설 현장을 촬영합니다. 플로리다에서 겨우 150킬로미터 거리였죠. 케네디는 해상 봉쇄를 선택했고, 세계는 13일 동안 숨을 죽였습니다. 물밑에서는 더 아슬아슬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미군의 폭뢰 위협을 받던 소련 잠수함 B-59에서 핵어뢰 발사가 논의됐는데, 부함대장 바실리 아르히포프가 동의를 거부해 발사가 무산됐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소련은 미사일을 철수했고, 미국은 쿠바 불침공을 약속하며 터키의 미사일도 조용히 거뒀습니다. 상호확증파괴(MAD)의 공포를 실감한 양국은 1963년 직통전화(핫라인)를 놓았습니다. 공멸 직전까지 가 본 경험이 오히려 대화의 문을 연 것이죠.
데탕트, 그리고 달에 남은 발자국
1970년대에는 긴장 완화, 곧 데탕트(détente)가 찾아옵니다. 1972년 닉슨은 적성국이던 중국을 방문해 세계를 놀라게 했고, 같은 해 소련과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에 서명했습니다. 1975년 헬싱키 협정에서는 유럽 국경의 현상 유지와 인권 존중을 맞바꾸는 큰 거래가 이뤄졌는데, 이때 명문화된 인권 조항이 훗날 동구권 반체제 운동의 근거가 됩니다. 한편 냉전은 뜻밖의 유산도 남겼습니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로 시작된 우주 경쟁입니다. 1961년 가가린이 최초로 우주에 나갔고, 1969년 아폴로 11호가 인간을 달에 세웠습니다. 체제 경쟁의 부산물로 인공위성, 통신, 컴퓨터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했죠. 심지어 인터넷의 전신인 아파넷(ARPANET)도 냉전기 미국의 군사 연구에서 나왔습니다. 이 대결이 어떻게 끝나는지는 3강에서 다룹니다. 먼저 2강에서는 냉전의 그늘 아래 제국들이 해체되던 또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핵무기는 냉전을 열전으로 만들지 않은 억지력이었을까요, 아니면 인류가 운 좋게 피해 간 도박이었을까요. 쿠바의 13일이 다른 결말로 끝났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 "억지가 작동했다"는 사후 평가는 얼마나 믿을 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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