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세계 2강. 바그다드: 세계 지식의 수도
유럽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잊고 지내던 시절, 바그다드는 그를 아랍어로 읽고 주석을 달고 있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책장은 이 도시에서 먼저 채워졌습니다.
풀고 시작
원형 도시의 탄생
750년 압바스 가문이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칼리파 자리를 차지합니다. 새 왕조는 제국의 무게중심을 시리아에서 동쪽으로 옮기기로 하죠. 762년 칼리파 알만수르는 티그리스 강가에 완전히 새로운 수도를 설계합니다. 성벽이 정확한 원을 그리는 계획도시, 바그다드입니다. 입지가 절묘했습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물길로 인도양 무역과 내륙 교역이 만나는 자리였고, 도시는 빠르게 성장해 당대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가 됩니다. 페르시아 관료제의 전통, 아랍어라는 공용어, 그리고 무역이 실어 오는 부. 지식이 폭발할 조건이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지혜의 집과 번역 운동
9세기 칼리파 알마문 시대에 바그다드의 학문 활동은 절정에 오릅니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이름이 지혜의 집(바이트 알히크마)입니다. 다만 지적 정직성을 위해 한 가지는 구분해 두겠습니다. 지혜의 집이 오늘날의 국립 연구소 같은 거대 기관이었는지, 궁정 도서관에 가까웠는지는 학계에서 논쟁 중입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은 번역 운동 자체입니다. 약 두 세기에 걸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유클리드의 기하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갈레노스의 의학이 조직적으로 아랍어로 옮겨졌습니다.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 같은 전문 번역가들은 그리스어 사본들을 대조해 가며 번역했고, 칼리파와 부유한 가문들이 후원자로 나섰습니다. 여기에 중국에서 전해진 제지술이 결합합니다. 양피지보다 훨씬 싼 종이 덕에 책이 상품이 되었고, 바그다드에는 서점과 필사공 거리가 생겨났습니다. 번역은 보존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학자들은 번역한 책의 오류를 잡고, 관측으로 검증하고, 새 장을 써 나갔습니다.
세 명의 거인
이 토양에서 자란 학자를 세 명만 꼽아 보겠습니다. 9세기 바그다드의 알콰리즈미는 방정식을 푸는 일반 절차를 정리한 책을 썼는데, 제목에 들어간 "알자브르"라는 말이 대수학(algebra)의 어원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라틴어로 옮겨지며 변형된 것이 바로 알고리즘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이야기의 전말은 알고리즘의 유래에서 따로 다룹니다. 중앙아시아 출신의 이븐 시나(980~1037, 라틴명 아비센나)는 철학자이자 의사로, 그의 『의학정전』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 의과대학에서 수백 년간 교재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이슬람 스페인 코르도바의 이븐 루시드(1126~1198, 라틴명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전 작품에 정밀한 주석을 달아, 라틴 유럽에서 그냥 "주석가"라고만 불렸습니다. 흥미로운 점이 있죠. 황금기는 바그다드 한 곳이 아니라 코르도바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아랍어라는 학문 공용어로 연결된 거대한 네트워크였다는 사실입니다.
지식은 어떻게 유럽으로 갔나
12세기 유럽인들이 이 보물창고를 발견합니다. 기독교 세력이 되찾은 스페인의 톨레도에서는 아랍어 장서를 라틴어로 옮기는 번역 작업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고, 시칠리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베로에스의 주석과 함께 유럽 대학에 들어오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이 그와 씨름하며 태어났고, 알콰리즈미의 책과 함께 들어온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유럽의 계산 방식을 바꿨습니다. 르네상스가 "고전의 재발견"이라면, 그 고전의 상당 부분을 보존하고 살찌워 되돌려준 중계자가 이슬람 세계였던 셈입니다. 정작 바그다드는 1258년 몽골군에게 함락되며 칼리파 시대의 막을 내립니다. 다음 강에서는 그 폐허 위에서 일어나 세 대륙을 지배한 마지막 이슬람 대제국, 오스만을 만납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한 문명의 전성기는 스스로 만든 것과 물려받아 발전시킨 것 중 무엇으로 평가해야 할까요. "보존자"라는 표현은 이슬람 과학의 독창성을 지우는 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