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와 문명의 탄생 1강. 아프리카에서 온 우리 모두
지구의 80억 인류는 전원이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원래 지구의 유일한 인류가 아니었습니다.
풀고 시작
모로코에서 발견된 30만 년 전의 얼굴
2017년, 모로코의 제벨 이르후드(Jebel Irhoud) 유적에서 나온 두개골이 약 30만 년 전 것으로 재측정되면서 학계가 술렁였습니다. 그때까지 호모 사피엔스의 최고 기록은 동아프리카의 약 20만 년 전이었는데, 단숨에 10만 년이 늘어난 데다 장소가 대륙 반대편이었기 때문이죠. 이 발견이 시사하는 그림은 이렇습니다. 사피엔스는 어느 한 지점의 "에덴 동산"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여러 지역의 집단들이 오가고 섞이는 넓은 그물망 속에서 서서히 빚어졌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기원설 자체는 화석·유전자 증거가 겹겹이 떠받치는 확고한 통설이지만, 대륙 안에서의 세부 그림은 이렇게 계속 갱신되고 있습니다.
대륙을 넘는 긴 여정
사실 아프리카 밖 진출 시도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레반트 지역에는 10만 년도 더 전에 나간 사피엔스의 흔적이 남아 있죠. 그러나 이 이른 개척자들은 오늘날 인류의 조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생 비아프리카계 인류 대부분의 뿌리가 되는 결정적 확산은 대략 6만~7만 년 전에 일어났습니다. 경로는 서아시아를 거쳐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한 갈래는 남아시아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 늦어도 약 5만 년 전에는 바다를 건너 호주에 도달했습니다. 배 없이는 불가능한 거리였으니, 이때 이미 항해가 시작된 셈이죠. 다른 갈래는 유라시아 내륙과 유럽으로 퍼졌고, 마지막으로 약 1만 5천 년 전을 전후해 베링 육교 방면을 거쳐 아메리카 대륙까지 들어갔습니다. 수만 년에 걸친 이 확산으로 사피엔스는 극지방부터 열대까지, 지구상 거의 모든 기후대에 정착한 유일한 대형 포유류가 되었습니다. 세부 연대는 유적마다 논쟁이 있지만, 큰 줄기는 화석과 유전자 지도가 일치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여정에서 사피엔스는 빈 땅을 걸은 것이 아닙니다. 유럽과 서아시아에는 추위에 적응한 건장한 네안데르탈인이, 아시아에는 시베리아 데니소바 동굴의 손가락뼈 하나로 존재가 밝혀진 데니소바인이,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에는 키 1미터 남짓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 4만 년 전을 지나며 이들이 차례로 사라지고 사피엔스만 남습니다. 왜일까요. 직접 학살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유력한 설명은 경쟁과 흡수입니다. 더 큰 집단 규모, 더 넓은 교역망과 협력이 자원 경쟁에서 우위를 만들었고, 소수였던 다른 인류는 밀려나거나 사피엔스 집단 안으로 섞여 들어갔다는 것이죠. 실제로 그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티베트 고원 주민의 고산 적응을 돕는 유전자가 데니소바인에게서 왔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로, 그들은 우리 게놈 속에 남아 오늘도 우리 몸속을 흐르고 있으니까요.
원시는 비참했을까요
수렵채집 생활이라고 하면 굶주림에 시달리는 나날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인류학자 리처드 리(Richard Lee)가 칼라하리 사막의 수렵채집민을 조사해 보니, 식량 구하는 노동이 주당 20시간 안팎에 불과했습니다. 마셜 살린스(Marshall Sahlins)는 이를 근거로 수렵채집 사회를 원초적 풍요 사회(original affluent society)라 불렀죠. 원하는 것이 적으니 적게 일하고도 풍요로웠다는 겁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 계산에는 식품 가공이나 도구 제작 시간이 빠져 있었고, 높은 유아 사망률과 집단 간 폭력을 고려하면 낙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입니다. 통설은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비참한 생존 투쟁도, 잃어버린 낙원도 아닌, 나름의 균형을 가진 삶의 방식이었다는 것이죠. 이 논쟁은 다음 강의 질문으로 곧장 이어집니다. 그 균형을 깨고 인류가 농사를 택한 것은 과연 진보였을까요.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네안데르탈인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 우리는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했을까요. 인권의 경계는 어디에 그어졌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