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세계대전 5강. 홀로코스트: 기억해야 하는 이유
600만 명이라는 숫자는 통계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이 600만 번 지워진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 강의는 재미가 아니라 기억을 위한 시간입니다.
풀고 시작
학살은 어떻게 단계적으로 진행됐는가
홀로코스트(Holocaust)는 나치 독일이 유럽 유대인 약 600만 명을 조직적으로 살해한 사건입니다. 이 학살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1935년 뉘른베르크법이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했고, 1938년 11월 "수정의 밤"에는 전국의 유대인 상점과 회당이 파괴됐습니다. 배제에서 격리로, 격리에서 학살로 단계가 올라갔습니다. 1941년 소련 침공과 함께 특무부대가 점령지에서 총살을 자행했고, 1942년 1월 반제 회의에서 고위 관료들은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의 실행을 조율했습니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절멸수용소에서 살해는 수송 시간표와 처리 절차를 갖춘 행정 업무처럼 집행됐습니다. 희생자는 유대인만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집시), 장애인(이른바 T4 작전), 동성애자, 정치범, 소련군 포로가 함께 죽어 갔습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단계가 법령, 서류, 시간표라는 근대 국가의 평범한 도구로 수행됐다는 사실입니다.
평범한 악이라는 물음
1961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수송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렸습니다. 방청석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리 부스 안의 피고에게서 괴물이 아니라 상투어로 말하는 관료를 보았고, 이 관찰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말로 남겼습니다. 생각하기를 그만둔 평범한 사람이 학살의 톱니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테제는 격렬한 논쟁을 낳았고 지금도 논쟁 중입니다. 후대의 연구, 특히 베티나 슈탕네트는 아이히만이 법정 밖에서는 확신에 찬 반유대주의자였으며 재판에서 평범한 관료를 연기했음을 문서로 보여줬습니다. 그렇다면 아렌트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일 수는 있어도, 물음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명령과 분업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밀그램의 복종 실험, 그리고 학살에 가담한 평범한 예비경찰대대를 추적한 브라우닝의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재판이 만든 새로운 언어
1945년부터 이듬해까지 뉘른베르크에서 연합국은 나치 지도부를 국제 법정에 세웠습니다. 패전국 지도자를 보복이 아니라 재판으로 단죄한 이 시도는 "인도에 반한 죄"라는 새로운 죄목을 국제법에 새겼고, 국가의 명령에 따랐다는 항변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승자의 재판이라는 비판도 당대부터 있었지만, 개인의 책임을 묻는 국제 형사 정의의 출발점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같은 시기 폴란드 출신 유대인 법률가 라파엘 렘킨은 민족 집단 자체의 절멸을 가리키는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말을 만들었고, 그의 집요한 노력 끝에 1948년 유엔은 제노사이드 협약을 채택했습니다. 이름이 생기자 범죄를 부를 수 있게 됐고, 부를 수 있게 되자 처벌과 예방을 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억의 정치, 기억의 제도
전쟁이 끝났다고 기억이 저절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닙니다. 독일도 전후 한동안은 침묵과 자기 연민이 앞섰고, 본격적인 성찰은 1960년대 이후 세대 교체와 함께 왔습니다. 1970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바르샤바 게토 봉기 기념비 앞에서 예고 없이 무릎을 꿇은 장면은, 사죄가 국가의 품격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독일은 학살 부정을 처벌하는 법, 의무 교육, 수도 한복판의 기념비로 기억을 제도화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대비됩니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처럼 식민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공식 표명이 있었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 서술 축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되풀이되는 부정과 반발이 사죄의 진정성을 계속 흔들어 왔습니다. 전쟁 책임의 기억은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의 정치라는 것을 두 나라의 차이가 보여줍니다. 기억이 개인의 다짐에 머물면 세대와 함께 사라집니다. 법과 교육과 기념일이라는 제도가 될 때에야 기억은 다음 세대로 건너갑니다. 유엔이 아우슈비츠 해방일인 1월 27일을 국제 추모의 날로 정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직접 겪은 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도 기억이 살아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법과 기념일로 충분할까요, 아니면 각 세대가 스스로 다시 물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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