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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 1강. 갈릴레오와 낙하: 물리학의 탄생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진다는 2천 년의 상식은 실험이 아니라 단 하나의 사고실험으로 무너졌습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무거운 돌과 가벼운 돌을 끈으로 묶어 떨어뜨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은 갈릴레오의 사고실험이 겨냥한 결론은 무엇일까요?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진다고 가정하면, 묶인 돌은 "더 무거우니 더 빨리"와 "느린 쪽이 발목을 잡으니 더 천천히"라는 모순된 두 결론을 동시에 낳습니다. 모순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낙하 빠르기가 무게와 무관하다는 것이죠. 앞의 두 보기가 바로 그 모순의 두 갈래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에서 운동이란

돌은 왜 아래로 떨어지고 불꽃은 왜 위로 오를까요?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의 답은 나름대로 우아했습니다. 운동이란 물체의 본성이 실현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흙과 물로 된 무거운 물체는 우주의 중심(지구)을 향해 떨어지는 것이 본성이고, 불과 공기는 위로 오르는 것이 본성입니다. 그리고 이 자연스러운 운동의 빠르기는 무게에 비례한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10배 무거운 돌은 10배 빨리 떨어진다는 것이죠. 또 하나의 핵심 교리는 움직이는 것에는 항상 움직이게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명제입니다. 미는 손이 사라지면 운동도 멈춰야 합니다. 이 체계는 일상 경험과 잘 맞았고, 그래서 2천 년 가까이 살아남았습니다. 문제는 그 일상 경험이 마찰과 공기저항으로 오염된 경험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사고실험, 저울 없이 무너뜨리다

2천 년 묵은 이론을 무너뜨리는 데 필요했던 것은 놀랍게도 실험 장비가 아니라 종이 위의 논리였습니다. 갈릴레오(1564~1642)는 만년의 저서 『두 새로운 과학』(1638)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실험이 아닌 논리로 먼저 무너뜨립니다. 무거운 돌 H와 가벼운 돌 L을 끈으로 묶어 떨어뜨려 보죠. 아리스토텔레스가 옳다면 L은 느리게 떨어지려 하므로 H의 발목을 잡아, 묶음은 H 혼자일 때보다 느리게 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묶음 전체는 H보다 무거우므로 H보다 빨리 떨어져야 하죠. 같은 전제에서 모순된 두 결론이 나왔으니 전제가 틀린 것입니다. 낙하는 무게와 무관합니다. 피사의 사탑에서 공을 떨어뜨렸다는 유명한 일화는 제자 비비아니의 전기에만 나오는 이야기라서,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논증이 실험보다 먼저 승부를 끝냈다는 사실입니다.

경사면 실험: 낙하를 느리게 재생하다

그런데 낙하가 정확히 어떤 법칙을 따르는지 재려니 난감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낙하는 너무 빨라서 당시의 물시계로는 잴 수 없었거든요. 갈릴레오의 해법은 낙하를 희석하는 것이었습니다. 매끄러운 경사면에 공을 굴리면 낙하와 같은 종류의 운동을 느린 배속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측정 결과가 아름답습니다. 같은 시간 간격 동안 공이 굴러간 거리가 1, 3, 5, 7의 홀수 비를 이룹니다. 누적하면 1, 4, 9, 16, 곧 이동 거리가 시간의 제곱에 비례합니다(s ∝ t²). 이것이 등가속도 운동의 정의적 특징이며, 속도가 시간에 비례해 일정하게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경사를 아무리 바꿔도 이 법칙의 형태는 유지되므로, 경사를 수직까지 세운 극한인 자유낙하도 등가속도 운동이라고 그는 추론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가속도를 g ≈ 9.8m/s²라 부릅니다.

관성: 멈추는 데 이유가 필요하다

경사면은 또 하나의 보물을 내놓았습니다. 내리막을 굴러 내려온 공은 맞은편 오르막에서 거의 같은 높이까지 올라갑니다. 오르막의 경사를 점점 눕히면 공은 같은 높이에 이르기 위해 점점 더 멀리 굴러가죠. 그렇다면 오르막을 완전히 눕혀 수평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공은 되찾을 높이가 없으므로 영원히 굴러가야 합니다. 운동을 유지하는 데는 원인이 필요 없고, 오히려 멈추는 데 원인(마찰)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교리가 정확히 뒤집혔습니다. 이것이 관성(inertia) 개념의 탄생입니다.

관성은 갈릴레오에게 낙하보다 큰 문제를 풀어 주는 열쇠였습니다. 지구가 돈다면 뛰어오른 사람은 왜 서쪽에 떨어지지 않느냐는 코페르니쿠스 반대파의 논박에, 그는 『대화』(1632)에서 답합니다. 등속으로 미끄러지는 배의 선실 안에서는 공을 던지든 물방울을 떨어뜨리든 정지한 배에서와 똑같이 보입니다. 배와 함께 움직이는 것들은 그 운동을 관성으로 공유하기 때문이죠. 움직이는 지구 위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갈릴레오의 관성은 지구 표면을 따라가는 수평 운동에 묶여 있었고, 힘이 없으면 물체가 직선으로 영원히 간다는 완전한 형태는 데카르트를 거쳐 뉴턴의 제1법칙으로 완성됩니다. 다음 강에서 그 이야기를 다룹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아리스토텔레스 운동관의 핵심 주장으로 옳은 것은 무엇일까요?
무게에 비례하는 낙하와 "운동에는 항상 원인이 필요하다"가 아리스토텔레스 체계의 두 기둥입니다. 나머지 보기는 모두 갈릴레오 이후의 결론이며, 특히 첫 보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관성 법칙의 내용이죠.
문제 2. 갈릴레오가 낙하 대신 경사면에 공을 굴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유낙하는 물시계로 재기에 너무 빨랐습니다. 경사면은 같은 종류의 가속 운동을 희석해 보여 주는 장치였죠. 공기저항 제거가 목적이 아니었고, 등가속도는 경사면만의 현상이 아니라 수직 낙하까지 이어지는 일반 법칙입니다.
문제 3. 경사면 실험에서 같은 시간 간격마다 굴러간 거리가 1, 3, 5, 7의 비를 이룬다는 관찰이 곧바로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홀수의 합은 제곱수입니다. 1, 1+3=4, 1+3+5=9이므로 누적 거리는 1, 4, 9, 곧 t²에 비례하죠. 이는 속도가 시간에 비례해 일정하게 늘어나는 등가속도 운동의 특징이고, 가속도 자체는 일정합니다.
문제 4. 수평면 위의 공이 영원히 굴러가야 한다는 갈릴레오의 추론이 뒤집은 명제는 무엇일까요?
오르막 경사를 눕혀 가는 극한 논증은 운동 유지에 원인이 필요 없음을 보여 줍니다. 설명이 필요한 것은 운동이 아니라 정지(마찰)죠.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진다는 명제를 무너뜨린 것은 묶인 돌 사고실험으로, 별개의 논증입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마찰 있는 일상 세계를 꽤 잘 설명했습니다. 일상을 잘 설명하는 이론과 이상화된 극한에서 참인 이론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과학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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