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5강. 원자와 스펙트럼: 주기율표의 물리학
화학 교과서 첫 장의 주기율표는 사실 양자역학의 정리표입니다. 원소의 개성은 파동함수와 배타 원리가 만듭니다.
풀고 시작
궤도에서 확률 구름으로
원자 그림 하면 태양계처럼 전자가 핵 주위를 도는 모습이 떠오르시죠? 그 그림, 사실 100년 전에 폐기됐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수소 원자에 풀면 나오는 것은 궤도가 아니라 오비탈(orbital), 곧 전자가 발견될 확률의 3차원 분포입니다. 구형인 s 오비탈, 아령 모양의 p 오비탈처럼 각 오비탈은 고유한 모양과 에너지를 가지며, 몇 개의 양자수로 완전히 지정됩니다. 전자는 어디를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핵 주위에 정상파처럼 존재하며 측정될 때만 한 점에서 발견됩니다. 3강의 불확정성 원리가 말했듯, 궤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원자 속 전자에게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죠.
배타 원리, 주기율표를 설명하다
그렇다면 왜 모든 전자가 가장 낮은 오비탈로 떨어져 쌓이지 않을까요? 1925년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의 배타 원리(exclusion principle)가 답입니다. 전자 두 개는 결코 같은 양자 상태를 공유할 수 없습니다. 스핀까지 고려하면 오비탈 하나에 전자는 최대 두 개만 들어가고, 그래서 전자들은 낮은 자리부터 차곡차곡 껍질을 채워 올라갑니다. 껍질이 2개, 8개, 8개씩 차는 이 규칙에서 주기율표의 주기성이 그대로 나오죠. 나트륨이 염소와 격렬히 반응하고 아르곤이 아무것도 안 하는 이유는 전부 가장 바깥 전자 배치의 문제입니다. 화학은 최외각 전자의 양자역학입니다. 멘델레예프가 1869년에 경험적으로 배열한 표의 이유가 반세기 뒤에야 밝혀진 셈이죠. 이 지점에서 물리 서가는 화학 서가의 원자 구조와 화학 결합 논의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파울리는 이 원리로 1945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스펙트럼선, 원소의 지문
인류가 손에 넣기도 전에 1억 5천만 km 밖에서 먼저 발견한 원소가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원리부터 보겠습니다. 원자의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이므로, 원자가 내거나 흡수하는 빛도 특정 파장뿐입니다. 이 선들의 패턴은 원소마다 달라 원소의 지문 노릇을 하죠. 1859년 키르히호프와 분젠은 분광법으로 새 원소 세슘과 루비듐을 찾아냈고, 이 기술은 곧 지구 밖으로 향했습니다. 1868년 일식 관측에서 장센과 로키어는 태양 스펙트럼에서 어떤 지상 원소와도 맞지 않는 노란 선을 발견했고, 태양신 헬리오스의 이름을 따 헬륨이라 명명했습니다. 지구의 광물에서 헬륨이 검출된 것은 27년 뒤인 1895년, 램지에 의해서입니다. 시료 한 톨 없이 스펙트럼만으로 태양의 원소를 먼저 찾아낸 것이죠. 오늘날 천문학자가 별의 조성과 은하의 후퇴 속도를 아는 방법도 결국 이 지문 읽기입니다.
레이저, 준위를 부리는 기술
에너지 준위를 이해하면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1917년 아인슈타인은 들뜬 원자가 지나가는 빛에 자극받아 같은 파장, 같은 위상의 빛을 내놓는 유도방출(stimulated emission)을 이론적으로 예견했습니다. 들뜬 원자가 바닥 원자보다 많은 역전 분포를 만들어 주면 빛이 눈사태처럼 증폭되는데, 이것이 레이저(LASER, 유도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입니다. 1960년 메이먼이 루비 결정으로 최초의 레이저를 만들었고, 발표 당시 "문제를 찾는 해결책"이라 불리던 이 장치는 광통신, 수술, 반도체 공정의 핵심이 됐습니다. 양자역학이 기술이 되는 이 흐름은 6강의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