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 1강. 온도와 열: 열소설의 몰락
대포를 깎던 무딘 드릴이 물을 끓였습니다. 열이 물질이라면, 그 물질은 어디서 무한히 나오는 것일까요.
풀고 시작
열은 유체다: 18세기의 통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을 붙이면 열이 흐릅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말이죠. 그래서 18세기 과학자들은 열을 눈에 보이지 않는 유체로 상상했습니다. 라부아지에(Lavoisier)는 이 유체에 열소(caloric)라는 이름을 붙였고, 1789년의 원소 목록에 빛과 나란히 올렸습니다. 열소설은 꽤 그럴듯했습니다. 열이 뜨거운 물체에서 찬 물체로 흐르는 것은 열소가 이동하기 때문이고, 물체가 팽창하는 것은 열소가 스며들어 부피를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니까요. 열소는 생성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보존량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마지막 가정이 급소가 됩니다.
럼퍼드의 대포 공장
럼퍼드 백작(Count Rumford), 본명 벤저민 톰프슨(Benjamin Thompson)은 미국 태생으로 독립전쟁 때 영국 편에 섰다가 유럽으로 건너가 바이에른의 군무를 총괄한 인물입니다. 1798년 뮌헨의 병기창에서 대포 포신을 깎는 작업을 감독하던 그는 이상한 점을 붙잡았습니다. 무뎌진 드릴이 금속을 거의 깎아내지 못하는데도 열은 끝없이 나왔거든요. 그는 포신을 물통에 담그고 말이 끄는 드릴을 돌리게 했습니다. 약 두 시간 반 만에 물이 끓었습니다. 열소설대로라면 열은 금속 안에 저장된 유한한 유체여야 하는데, 마찰이 계속되는 한 열은 무한정 공급되었습니다. 럼퍼드는 결론지었습니다. 이렇게 무제한으로 공급될 수 있는 것은 물질일 수 없으며, 열의 정체는 운동이라고 말이죠. 이듬해 젊은 데이비(Humphry Davy)는 얼음 두 덩이를 서로 문질러 녹이는 실험으로 같은 결론에 힘을 보탰습니다. 여담으로 럼퍼드는 훗날 라부아지에의 미망인과 결혼했습니다. 열소설의 창시자 집안과 파괴자가 한 식탁에 앉은 셈이죠.
온도의 미시적 의미
열이 운동이라면 온도는 무엇일까요? 물질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고 분자들은 쉬지 않고 무작위로 흔들립니다. 온도는 이 무작위 운동의 격렬함, 정확히는 분자 하나가 갖는 평균 운동 에너지의 척도입니다. 뜨거운 커피의 물 분자는 미지근한 커피의 분자보다 평균적으로 빠르게 움직입니다. 여기서 열과 온도가 갈라집니다. 열(heat)은 온도 차 때문에 이동하는 에너지의 양이고, 온도(temperature)는 이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세기입니다. 욕조의 미지근한 물은 찻잔의 끓는 물보다 온도는 낮지만 분자 수가 압도적이라 품은 에너지 총량은 큽니다. 그래도 열은 찻잔에서 욕조로 흐르죠. 방향을 정하는 것은 총량이 아니라 온도입니다.
온도계에서 절대온도로
갈릴레이 이래의 온도계는 물질의 팽창을 빌려 온도를 쟀고, 파렌하이트(1724)와 셀시우스(1742)가 눈금을 표준화했습니다. 그러나 물의 어는점 같은 기준은 어디까지나 임의의 약속입니다. 1848년 켈빈 경(윌리엄 톰슨)은 특정 물질에 기대지 않는 절대온도 눈금을 제안했습니다. 온도가 분자 운동의 척도라면 운동이 최소가 되는 바닥, 즉 절대영도(0 K, 섭씨 영하 273.15도)가 존재해야 합니다. 절대영도 아래는 없습니다. 음의 길이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켈빈 눈금 덕분에 "온도가 두 배"라는 말이 물리적 의미를 갖게 되었고, 오늘날 국제단위계의 온도 단위도 켈빈입니다. 이것이 다음 강에서 다룰 열역학 법칙들의 언어가 됩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열소설은 틀렸지만 열의 흐름을 꽤 잘 설명했고 카르노의 열기관 분석도 열소설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틀린 이론이 옳은 결과를 낳는 일은 과학에서 무엇을 의미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