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과 빛 1강. 파동의 언어
파도가 해변까지 밀려와도 바닷물은 제자리에 있습니다. 이동한 것은 물이 아니라 에너지죠.
풀고 시작
물질은 남고, 흔들림만 간다
파동(wave)은 물질의 이동이 아니라 교란의 이동입니다. 바다 위 부표는 파도가 지나가도 그 자리에서 오르내리기만 하고, 소리가 방을 가로질러도 공기 분자가 방을 가로지르는 것은 아니죠. 매질의 각 부분은 제자리에서 진동하고, 그 진동의 패턴이 옆으로 전달됩니다. 그래서 파동이 실어 나르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와 정보입니다. 지진의 에너지가 수백 km를 건너오고, 목소리의 정보가 공기를 건너 귀에 닿죠. 전자기학 5강에서 본 전자기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매질조차 필요 없는 파동이었습니다.
파동을 재는 네 개의 자
파동 하나를 기술하는 데는 놀랍게도 네 개의 양이면 충분합니다. 진폭(amplitude)은 진동의 최대 폭이고, 파동의 에너지는 진폭의 제곱에 비례합니다. 파장(wavelength) λ는 마루에서 다음 마루까지의 거리죠. 진동수(frequency) f는 1초 동안의 진동 횟수로, 단위 Hz는 전자기파의 존재를 실험으로 입증한 헤르츠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한 번 진동에 걸리는 시간인 주기는 T = 1/f입니다. 그리고 속도가 이 둘을 묶죠. 1초에 f개의 파장이 지나가므로 v = fλ가 성립합니다. 중요한 점은 파동의 속도를 매질이 정한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매질에서 진동수를 올리면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파장이 짧아지죠. 예를 들어 공기 중 소리의 속도가 약 340m/s이므로, 440Hz인 라 음의 파장은 340/440으로 약 77cm라는 계산이 바로 나옵니다.
흔들리는 방향이 파동을 나눈다
진동 방향과 진행 방향의 관계로 파동은 둘로 나뉩니다. 횡파(transverse wave)는 진행 방향에 수직으로 진동합니다. 줄을 흔들 때 생기는 파동과 빛이 그렇죠. 종파(longitudinal wave)는 진행 방향과 나란히 압축과 팽창을 반복합니다. 소리와 용수철의 밀침파가 그렇습니다. 이 구분에는 실용적 위력이 있습니다. 지진파 중 P파는 종파라 고체와 액체를 모두 통과하지만, S파는 횡파라 액체를 통과하지 못하죠. 지구 반대편에 S파가 도달하지 않는 그림자 구역이 관측되었고, 여기서 지구 외핵이 액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파동의 언어를 읽으면 직접 갈 수 없는 행성의 내부까지 보이는 겁니다.
겹침의 규칙: 중첩과 간섭
두 파동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충돌하거나 튕겨 나가지 않고 그냥 겹칩니다. 중첩 원리(superposition principle)에 따르면 겹친 지점의 변위는 각 파동의 변위를 더한 값입니다. 마루와 마루가 만나면 더 큰 마루가 되는 보강 간섭, 마루와 골이 만나면 서로 지워지는 상쇄 간섭이 일어나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은 바깥 소음과 반대 위상의 파형을 만들어 귓속에서 상쇄시키는 장치입니다. 파동 더하기 파동이 0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입자에게는 불가능한 재주죠. 4강에서 이 재주가 빛의 정체를 판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갇힌 파동: 정상파
양 끝이 고정된 현에서는 파동이 반사되어 왕복하고, 나가는 파와 돌아오는 파가 간섭합니다. 이때 특정한 파장만 살아남아 진행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진동하는데, 이것이 정상파(standing wave)입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지점을 마디, 가장 크게 진동하는 지점을 배라고 부르죠. 길이 L인 현에는 L = nλ/2를 만족하는 파장만 허용되므로, 가능한 진동수는 띄엄띄엄한 값만 존재합니다. 피타고라스는 현의 길이가 2:1, 3:2 같은 간단한 정수비를 이룰 때 어울리는 화음이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해지죠. 다음 강에서 이 원리가 모든 악기의 뼈대임을 봅니다. 그리고 "허용된 값만 존재한다"는 이 발상은 먼 훗날 양자역학에서 원자를 설명하는 열쇠로 되돌아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파도, 소리, 지진파는 모두 흔들리는 매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빛은 진공을 건너오죠. 그렇다면 빛에서는 무엇이 흔들리는 걸까요. 이 질문이 19세기 물리학을 어디까지 끌고 갔을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