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3강. 불확정성 원리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정해져 있지 않은 것입니다.
풀고 시작
원리의 정확한 진술
물리학에서 가장 유명하면서 가장 자주 오해받는 원리를 꼽으라면 단연 이것입니다. 1927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가 정식화한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는 이렇게 말합니다. 입자의 위치의 퍼짐 Δx와 운동량의 퍼짐 Δp의 곱은 언제나 일정한 하한을 넘습니다. 식으로는 Δx·Δp ≥ ħ/2이고, 여기서 ħ는 플랑크 상수 h를 2π로 나눈 값입니다. 핵심은 이것이 개별 측정의 오차가 아니라 상태 자체의 통계적 퍼짐에 관한 진술이라는 점입니다. 같은 상태를 수없이 준비해 위치를 재면 어떤 분포가 나오고, 운동량을 재면 또 다른 분포가 나오는데, 두 분포의 폭을 동시에 임의로 좁힐 수 없다는 뜻이죠.
왜 그럴까요? 파동 그림에서 보면 자연스럽습니다. 드브로이에 따라 운동량은 파장에 대응합니다. 파장이 하나로 확정된 파동은 공간에 무한히 펼쳐져 위치가 완전히 불확정이고, 반대로 한 점에 몰린 짧은 펄스는 수많은 파장의 합성이라 운동량이 불확정입니다. 짧은 소리일수록 음높이가 흐릿하게 들리는 것과 같은 파동의 일반 수학(푸리에 분석)이며, 양자역학은 여기에 물질이 파동이라는 사실을 얹었을 뿐입니다.
흔한 오용 바로잡기
이 원리만큼 널리 오용되는 물리 법칙도 드뭅니다. 가장 흔한 혼동이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와의 동일시입니다. "보려면 빛을 쏴야 하고, 빛이 입자를 밀치니까 불확정하다"는 설명은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초기에 든 감마선 현미경 사고실험에서 유래했지만, 원리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 설명대로라면 더 영리한 측정법이 한계를 피해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캐너드와 로버트슨이 보인 수학적 형태의 불확정성은 측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상태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위치와 운동량이 정해져 있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날카로운 값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오용은 "관찰자"를 의식 있는 사람으로 읽는 것입니다. 여기서 측정이란 검출기와의 물리적 상호작용이지 누군가의 시선이 아닙니다. "쳐다보면 현실이 바뀐다"는 통속 서사나, 불확정성을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는 상대주의의 근거로 쓰는 수사는 물리학과 무관합니다.
두 개의 쌍, 그리고 영점 에너지
불확정성은 위치-운동량 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너지-시간 쌍도 ΔE·Δt ≥ ħ/2 꼴의 관계를 만족하는데,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양자역학에서 시간은 위치 같은 측정량이 아니라 배경 변수라서, 이 관계는 보통 "상태가 유지되는 시간이 짧을수록 에너지 폭이 넓다"로 읽습니다. 수명이 짧은 들뜬 상태가 내는 스펙트럼선이 그만큼 굵어지는 자연 선폭이 대표적 사례죠.
가장 극적인 귀결은 영점 에너지(zero-point energy)입니다. 절대영도에서도 입자는 완전히 멈출 수 없습니다. 멈춘다는 것은 위치와 운동량(0)이 동시에 확정된다는 뜻이라 원리가 금지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헬륨은 대기압에서 절대영도까지 내려도 얼지 않는데, 가벼운 원자의 영점 요동이 결정 격자를 흔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바닥의 요동은 다음 강에서 볼 해석 논쟁, 그리고 진공조차 비어 있지 않다는 입자물리의 그림으로 이어집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정해져 있는데 모르는 것"과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실험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4강의 벨 부등식에서 실제 물리학의 문제가 됩니다.
이전: 2강 파동함수와 확률 · 다음: 4강 해석 논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