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1강. 양자의 탄생: 절망의 가설
양자역학은 혁명가가 아니라, 자기 가설을 믿기 싫어한 보수적인 물리학자의 절망에서 태어났습니다.
풀고 시작
뜨거운 쇳덩이가 낸 숙제
난로 앞에 앉아 불을 쬐다가 자외선에 타 죽는 상상을 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없으시겠죠. 그런데 19세기 말의 최고 물리학 이론은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쇳덩이에서 시작합니다. 쇠를 달구면 검붉게, 더 달구면 주황으로, 더 달구면 희게 빛납니다. 온도만으로 색이 정해지는 이 복사를 이상화한 것이 흑체복사(blackbody radiation)입니다. 물리학자들은 온도별 스펙트럼 곡선을 정밀하게 측정해 두었지만, 고전 전자기학과 열역학으로는 이 곡선을 유도할 수 없었습니다. 레일리-진스 공식은 낮은 진동수에서는 잘 맞았지만 진동수가 커질수록 복사 에너지가 무한대로 발산했죠. 이대로라면 난로 앞의 사람은 정말로 자외선과 X선을 뒤집어써야 합니다. 훗날 에렌페스트가 자외선 파탄(ultraviolet catastrophe)이라 부른 이 파국은, 고전 물리학이 일상적인 현상 하나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고발장이었습니다.
플랑크, 믿기 싫은 답을 내놓다
1900년 12월 14일,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베를린 물리학회에서 해법을 발표합니다. 진동자가 에너지를 연속적으로가 아니라 E = hν라는 덩어리(양자, quantum)의 정수배로만 주고받는다고 가정하면, 측정 곡선과 정확히 일치하는 공식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h가 그 유명한 플랑크 상수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정작 플랑크 자신이 이 가정을 물리적 실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는 훗날 이를 "절망의 행동"이라 회고했고, 이후 여러 해 동안 양자를 고전 물리 안으로 되돌리려 애썼습니다. 혁명은 혁명가의 확신이 아니라, 실험 곡선 앞에서 물러설 수 없었던 보수주의자의 정직함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아인슈타인, 빛 자체를 쪼개다
플랑크는 물질과 빛의 에너지 교환만 불연속이라고 봤지만, 1905년 아인슈타인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빛 자체가 hν의 에너지를 갖는 입자적 덩어리(훗날 광자, photon)라는 것입니다. 근거는 광전효과였습니다. 금속에 빛을 쬐면 전자가 튀어나오는데, 파동 이론의 예측과 달리 아무리 센 빛이라도 진동수가 문턱값보다 낮으면 전자가 하나도 안 나오고, 튀어나온 전자의 에너지는 빛의 세기가 아니라 진동수에만 비례합니다. 광자 하나가 전자 하나를 때린다고 보면 전부 설명되죠. 여기에 통쾌한 반전이 하나 붙습니다. 밀리컨은 이 가설을 반박하려고 10년 가까이 정밀 실험을 했다가 오히려 완벽히 검증해 버렸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바로 이 광전효과로 1921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보어의 원자, 반쪽의 성공
1913년 닐스 보어(Niels Bohr)는 양자 개념을 원자에 이식합니다. 전자는 특정한 궤도에만 있을 수 있고, 궤도 사이를 건너뛸 때만 그 에너지 차이만큼의 빛을 내거나 흡수한다는 모형이었죠. 이 모형은 수소 스펙트럼의 발머 계열을 놀라운 정밀도로 재현했습니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했습니다. 전자가 둘 이상인 원자에는 적용되지 않았고, 스펙트럼선의 세기를 예측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왜 하필 그 궤도만 허용되는가"에 답이 없었습니다. 고전 궤도에 양자 규칙을 접붙인 임시방편이었던 셈이죠. 이 반쪽짜리 성공을 완전한 이론으로 바꾸는 작업이 다음 강의 주제인 파동역학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플랑크처럼 자기 이론을 믿지 않는 사람이 낸 가설과, 확신에 찬 사람이 낸 가설 중 과학은 어느 쪽을 더 신뢰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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