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4강.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 전쟁
20일 만에 한양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7년의 전쟁이 끝났을 때 자리를 지킨 왕조는 조선이었고, 흔들린 쪽은 일본과 명이었습니다.
풀고 시작
오지 않을 거라던 전쟁
1590년,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보냅니다. 100년 넘게 이어진 전국시대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막 끝낸 참이었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인해야 했죠. 그런데 돌아온 보고가 갈립니다. 정사 황윤길은 반드시 쳐들어온다고 했고, 부사 김성일은 그런 정황이 없다고 했습니다. 조정은 후자를 택합니다. 김성일이 민심 동요를 우려해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은 무방비 상태로 1592년을 맞습니다. 히데요시의 요구는 명을 칠 테니 길을 빌려 달라는 정명가도(征明假道)였습니다. 통일 과정에서 넘쳐난 무장 세력의 에너지를 밖으로 돌리려는 계산도 깔려 있었죠. 전쟁의 무대는 처음부터 조선 하나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였습니다.
20일 만의 붕괴
1592년 4월, 고니시 유키나가의 선봉이 부산에 상륙합니다. 부산진의 정발과 동래성의 송상현이 버티다 전사했지만 속도를 늦추지 못했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카드는 여진 정벌로 이름을 떨친 신립이었는데, 그는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기병으로 맞섰다가 조총 부대에 궤멸당합니다.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북으로 향했고, 개전 20일 만에 한양이 함락됩니다. 평양까지 내주고 의주에 이르자 왕이 압록강을 건너 명으로 망명하는 문제까지 거론될 지경이었습니다. 200년 가까이 큰 전쟁을 겪지 않은 나라의 방어 체계가 조총으로 무장하고 실전으로 단련된 군대 앞에서 한 달을 못 버틴 것입니다.
바다가 전쟁을 붙잡았다
육지가 무너지는 동안 바다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개전 직후 옥포에서 첫 승리를 거둔 뒤 연전연승했고, 1592년 7월 한산도 앞바다에서 학익진으로 일본 주력 함대를 격파합니다. 이 승리의 의미는 격침한 배의 수에 있지 않습니다. 일본의 원래 구상은 육군이 북상하는 동안 수군이 남해를 돌아 서해로 올라가 물자를 대는 것이었는데, 그 보급선이 끊긴 것이죠. 전라도의 곡창도 지켜졌습니다. 이순신이 파직된 뒤 1597년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이 궤멸하자 일본군이 곧바로 전라도로 밀고 들어간 사실이 이를 거꾸로 증명합니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그가 남은 배 열세 척으로 울돌목의 물살을 이용해 이긴 명량해전은, 무너진 그 축을 되살린 싸움이었습니다.
관군이 비운 자리를 메운 사람들
정규군이 무너진 자리를 채운 것은 지역 사회였습니다. 의령에서 일어난 곽재우는 붉은 옷을 입고 유격전을 펴 홍의장군으로 불렸고, 조헌과 고경명은 목숨을 잃으면서도 일본군의 진격을 늦췄습니다. 휴정과 유정이 이끈 승병도 여기에 가세했죠. 이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 명이 참전합니다. 명에게 이 전쟁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라 자국 코앞의 방어선 문제였습니다. 앞서 1592년 10월 김시민이 진주성을 지켜냈고, 1593년 1월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되찾았으며, 곧이어 2월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이기면서 전선이 남쪽으로 밀려 내려갑니다. 이후 전쟁은 강화 교섭으로 길게 늘어지다 결렬되어 1597년 정유재란으로 재개되고, 1598년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끝납니다. 이순신은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전사합니다.
7년이 남긴 삼국의 결산
이 전쟁의 청구서는 세 나라에 각각 다르게 날아갔습니다. 조선은 인구와 경작지가 크게 줄었고 경복궁과 사찰, 사고(史庫)가 불탔습니다. 전쟁 비용을 대려고 곡식을 받고 관직 문서를 파는 납속책이 시행되면서 신분 질서에도 균열이 생깁니다. 일본은 도자기 기술자를 대거 끌고 가 자기 산업의 기반을 얻었지만, 히데요시 가문은 몰락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엽니다. 정작 왕조의 명운까지 흔들린 쪽은 명입니다. 막대한 군사비로 재정과 병력을 소모하는 사이 만주에서 누르하치가 여진을 통합했고, 이 흐름이 후금과 청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명의 쇠퇴에는 재정 문란과 정쟁 같은 요인이 겹쳐 있어 이 전쟁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조선을 구하러 온 파병이 그 부담을 한층 키운 것은 분명하죠. 이 뒤바뀐 판도는 세계사 동아시아 강에서 대륙 쪽 시선으로 다시 보게 됩니다. 조선에게는 곧바로 다음 청구서가 도착합니다. 명과 청 사이에서 어느 쪽에 설 것인가라는 질문이었고, 조선이 그 답을 어떻게 셈했는지가 다음 강의 병자호란으로 이어집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조선은 국토가 잿더미가 되고도 왕조를 유지했습니다. 반면 침략자 일본은 곧 정권이 바뀌었고, 구원자였던 명은 반세기 안에 왕조 자체가 무너졌습니다. 이 전쟁에서 진 나라와 이긴 나라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