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와 고대 2강. 고조선: 첫 나라의 실체
곰이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 뒤에는, 법전 8개 조항과 국제 전쟁을 치른 진짜 나라가 있습니다.
풀고 시작
신화를 읽는 법
단군 신화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세기 고려 승려 일연의 삼국유사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곰에서 사람이 된 웅녀와 혼인해 단군왕검을 낳았고, 단군이 조선을 세웠다는 이야기죠. 기원전 2333년이라는 연도는 신화 원문이 아니라 후대의 계산으로 붙은 숫자입니다.
여기서 역사학의 기본기가 등장합니다. 신화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상징의 기록입니다. 곰과 호랑이는 특정 동물을 숭배하던 부족을, 환웅의 하강은 이주해 온 지배 집단을 반영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군 신화가 말해주는 것은 "기원전 2333년에 나라가 섰다"가 아니라, 하늘 신앙을 가진 집단과 곰 토템 집단이 결합해 지배 체제를 만들었다는 사회상입니다. 13세기, 몽골 침략기에 일연이 이 신화를 굳이 책 첫머리에 실은 맥락도 함께 읽어야 하죠. 신화를 문자 그대로 믿는 것도, 통째로 버리는 것도 둘 다 사료를 못 읽는 것입니다.
고고학적으로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해 늦어도 기원전 4~3세기에는 중국 측 기록(연나라와의 충돌)에 등장하는 실체 있는 정치체였습니다.
법 조항 셋이 그리는 사회의 초상
고조선에는 범금 8조라는 법이 있었습니다. 중국 역사서 한서 지리지에 그중 3개 조항만 전해지죠.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죽인다. 남을 다치게 한 자는 곡물로 갚는다. 도둑질한 자는 그 집의 노비로 삼되, 용서받으려면 50만 전을 내야 한다.
겨우 세 문장인데, 사회 전체가 보입니다. 살인죄 처벌은 노동력, 즉 사람의 생명을 중시했음을 보여줍니다. 곡물 배상은 농경 사회이자 사유 재산이 확립된 사회라는 뜻이고, 절도범을 노비로 만든다는 조항은 신분제가 존재했다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50만 전이라는 속전은 화폐 개념까지 있었음을 시사하죠. 법은 그 사회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위만, 찬탈자인가 계승자인가
기원전 194년 무렵, 중국 연나라 방면에서 무리를 이끌고 망명한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합니다. 그럼 이때부터는 중국인의 나라일까요. 학계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위만은 나라 이름을 조선 그대로 유지했고, 토착민을 높은 자리에 등용했습니다. 위만조선은 철기 문화를 본격 수용하고, 한반도 남부 세력과 한나라 사이의 중계 무역을 장악하며 성장했죠.
바로 그 성장이 화근이었습니다.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대군을 보내 왕검성을 함락시킵니다. 고조선은 1년 넘게 저항했고 전쟁 중 한나라 장수들이 문책당할 만큼 만만치 않았지만, 지배층의 내분 끝에 무너졌습니다. 한은 그 자리에 낙랑군을 비롯한 한군현을 설치했고, 이 외래 권력과의 길항 속에서 토착 사회는 철기 문화를 소화하며 다음 주인공들, 삼국을 키워냅니다.
고조선은 어디에 있었나: 끝나지 않은 논쟁
고조선의 중심지가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학계의 논쟁 중인 문제입니다. 비파형 동검과 관련 유적의 분포를 근거로 중심지를 요령 지방으로 보는 요령설, 왕검성 함락 이후 낙랑군의 위치와 대동강 유역의 유적을 근거로 하는 평양설, 그리고 초기 중심지는 요령이었으나 연나라와의 충돌 이후 평양으로 옮겨왔다는 이동설이 있습니다. 현재는 이동설이 폭넓은 지지를 받지만 확정된 정설은 아닙니다.
여기서 경계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영토가 넓어야 위대한 역사라는 생각이죠. 중심지 논쟁은 사료와 유물로 다투는 학술 문제이지, 민족의 자존심을 거는 문제가 아닙니다. 증거가 가리키는 곳까지만 말하는 것, 그것이 1강에서 본 고고학의 태도이고 역사학의 태도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13세기 몽골 침략기의 일연이 단군 신화를 기록한 동기와, 오늘날 우리가 고조선의 영토를 궁금해하는 동기는 얼마나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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