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1강. 모든 것을 잘하는 나라도 수입합니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설거지까지 직접 하면 그 식당은 손해를 봅니다. 나라도 정확히 같은 이유로 수입을 합니다.
풀고 시작
수학자가 던진 질문 하나
수학자 스타니스와프 울람이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사회과학 전체를 통틀어 참이면서 동시에 뻔하지 않은 명제를 하나만 대 보라는 것이었죠. 새뮤얼슨은 한참 뒤에야 답을 내놓았는데, 그 답이 바로 비교우위(comparative advantage)였습니다. 참인데 뻔하지 않다는 평가가 절묘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무역을 시합처럼 생각합니다. 잘 만드는 쪽이 팔고 못 만드는 쪽이 사는 것이라고요. 그것은 절대우위(absolute advantage), 즉 같은 자원으로 더 많이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실제 교역을 결정하는 것은 절대적인 실력이 아니라 상대적인 포기 비용입니다. 타이핑까지 사무실에서 제일 빠른 변호사가 여전히 비서를 두는 이유가 여기 있죠. 그 한 시간을 변론에 쓰면 훨씬 큰 가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리카도의 숫자판
1817년 데이비드 리카도가 든 예시는 지금도 교과서 첫 장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영국은 옷감 한 단위를 만드는 데 노동자 100명, 포도주 한 단위에 120명이 필요합니다. 포르투갈은 옷감에 90명, 포도주에 80명이면 충분합니다. 포르투갈이 둘 다 앞섭니다. 그러면 영국은 팔 것이 없어야 할 텐데, 계산을 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포르투갈이 옷감 한 단위를 만들려면 90명을 묶어 두어야 하고, 그 인력이면 포도주를 1.1단위 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영국은 옷감 한 단위를 얻으려고 포도주를 0.83단위만 포기하면 됩니다. 옷감의 진짜 값은 영국 쪽이 쌉니다. 영국이 가진 220명을 전부 옷감에, 포르투갈이 가진 170명을 전부 포도주에 넣으면 세계 생산은 옷감 2.2단위와 포도주 2.125단위가 됩니다. 각자 알아서 두 가지를 만들던 시절의 옷감 2단위, 포도주 2단위보다 큽니다. 아무도 더 열심히 일하지 않았는데 나눌 것이 늘어난 것이죠.
파이는 커지는데 내 몫은 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많은 논쟁이 시작됩니다. 무역이 나라 전체의 파이를 키운다는 명제와, 그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이 이득을 본다는 명제는 전혀 다른 말이기 때문입니다. 1941년 볼프강 스톨퍼와 새뮤얼슨은 무역이 그 나라에 풍부한 생산요소의 보상을 올리고 희소한 생산요소의 보상을 내린다는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자본이 풍부한 나라가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입하면, 국내 그 부문 노동자의 처지는 나빠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론이 예측한 승자와 패자가 실제로 나타나는가는 오랫동안 실증의 영역이었는데, 데이비드 오터와 공저자들의 이른바 중국 쇼크 연구는 수입 경쟁에 크게 노출된 미국 지역의 고용과 임금이 예상보다 오래 회복되지 못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반면 소비자 가격 하락과 수출·서비스 부문의 고용 증가를 함께 계산하면 순효과는 여전히 양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가 수입품의 혜택은 소득이 낮은 가계일수록 크게 돌아간다는 연구도 있어서, 무역의 분배 효과는 임금 쪽만 봐서는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한쪽 계산만 보고 결론을 내리면 반드시 절반을 놓칩니다. 리카도 모형이 조용히 가정한 것도 짚어 둘 만합니다. 그 모형에서 노동자는 옷감 공장에서 포도주 밭으로 아무 마찰 없이 옮겨 갑니다. 현실의 이동에는 재교육과 이사와 몇 년의 시간이 듭니다.
보상은 왜 자주 약속으로만 남을까요
교과서의 표준 처방은 명쾌합니다. 무역으로 커진 이득의 일부를 떼어 손해 본 사람에게 넘기면 모두가 이전보다 나아진다는 것이죠. 미국은 1962년 무역확장법으로 무역조정지원 제도를 만들어 실제로 이 길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보상은 잘 작동하지 않는 편입니다. 이유는 정치적입니다. 이득은 수천만 명에게 몇 만 원씩 얇게 퍼지고 손실은 특정 지역 특정 공장에 두껍게 쌓입니다. 얇게 이득 본 사람은 조직되지 않지만, 두껍게 잃은 사람은 확실하게 조직됩니다. 게다가 누가 무역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고 누가 자동화나 경기 탓인지 가려내는 일부터 어렵습니다. 다만 반론도 분명합니다. 원인을 무역으로 특정해야만 자격이 생기는 좁은 제도 대신, 실직 사유를 가리지 않는 넓은 고용안전망과 재교육을 갖춘 나라에서는 조정 비용이 훨씬 낮게 관찰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상은 원리상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제도를 어떻게 설계했느냐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무역 정책 논쟁은 효율의 언어로 시작해 늘 분배와 정치의 언어로 끝납니다. 다음 강에서 볼 환율, 그리고 3강의 관세 논쟁도 결국 이 지점으로 돌아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무역의 이득이 손실보다 크다는 계산이 맞다고 해도, 그 보상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개방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보상 없는 효율과 효율 없는 보호 사이에서 어디에 서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