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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와 금융 4강. 거품은 어떻게 부풀고 터지는가

위기는 사람들이 갑자기 어리석어져서 오지 않습니다. 오래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옵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1637년 네덜란드 튤립 파동에 대한 최근 역사 연구의 평가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요?
구근 값이 치솟았다가 무너진 것은 사실이지만, 거래는 비교적 좁은 상인과 애호가 집단 안에서 이뤄졌고 대량 파산이나 자살이라는 극적 서사는 19세기 대중서를 거치며 부풀려진 부분이 큽니다. 그렇다고 사건 자체가 허구인 것은 아니므로 세 번째 보기는 반대 방향의 과장입니다.

튤립과 남해, 통설과 실제를 갈라내기

거품 이야기의 원조는 늘 튤립입니다.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희귀 튤립 구근 하나가 장인의 몇 년 치 수입과 맞먹는 값에 거래되다가 1637년 초 순식간에 무너졌다는 이야기죠.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 뒤에 붙은 살입니다. 온 국민이 뛰어들었고 파산과 자살이 줄을 이었으며 네덜란드 경제가 무너졌다는 서사는 상당 부분 19세기 대중 교양서를 거치며 증폭된 것입니다. 역사학자 앤 골드가는 2007년 연구에서 당시 계약과 소송 기록을 뒤진 끝에, 거래가 부유한 상인과 애호가라는 좁은 범위에서 이뤄졌고 실제 파산은 드물었다고 정리했습니다. 1720년 영국의 남해회사 사건은 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국가 부채를 자사 주식으로 바꿔 주는 대가로 특권을 얻은 회사의 주가가 몇 달 만에 폭등했다가 붕괴했고, 뉴턴도 큰돈을 잃었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그가 남겼다는 유명한 한탄은 후대의 전언이라 출처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거품을 공부할 때 첫 작업은 사건과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갈라내는 일입니다.

1929년, 폭락이 붕괴가 된 경로

주가 폭락 자체는 위기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1929년 이후 미국을 무너뜨린 것은 그 다음에 온 은행의 연쇄 도산이었습니다. 예금보험이 없던 시절 한 은행의 소문은 옆 은행 창구의 줄로 번졌고, 은행이 사라지자 대출 관계와 신용 평가 정보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깊어졌는지는 지금도 학파가 갈리는 문제입니다. 밀턴 프리드먼과 애나 슈워츠는 1963년 저작에서 연방준비제도가 통화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은 정책 실패를 지목했습니다. 케인스 계열은 투자와 소비 수요 자체가 무너진 것이 본질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금본위제라는 족쇄가 각국의 대응을 묶었다는 설명이 더해졌고, 실제로 금본위제를 먼저 벗어난 나라가 대체로 먼저 회복했다는 비교 연구가 이 견해를 뒷받침합니다. 세 설명은 배타적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층을 짚고 있으며, 이 논쟁이 오늘날 위기 대응 매뉴얼의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2008년, 연쇄를 한 칸씩 따라가기

2008년의 사슬은 주택담보대출에서 시작합니다. 신용이 낮은 차입자에게 나간 서브프라임 대출은 그 자체로는 규모가 제한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대출이 증권으로 포장된 다음이었습니다.

수천 건의 대출을 묶어 채권으로 만들고(증권화), 그 채권을 다시 묶어 조각내면서 위험이 분산되었다고 간주했습니다. 신용평가사는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 상당수에 최고 등급을 매겼는데, 평가 수수료를 상품 발행자가 지불하는 구조라 이해 상충이 있었다는 비판이 이후 조사에서 반복 제기됐습니다. 모형의 전제는 하나였습니다. 전국 주택 가격이 동시에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2006년 무렵 미국 주택 가격이 꺾이면서 이 전제가 깨졌고, 누가 무엇을 얼마나 들고 있는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게 되자 은행 간 자금 시장이 얼어붙었습니다. 2008년 3월 베어스턴스가 인수되고, 9월 15일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으며, 바로 다음 날 보험사 AIG가 구제됐습니다. 원인 진단은 여기서도 갈립니다. 규제 완화와 금융권의 과도한 위험 추구를 지목하는 견해가 있고, 오랜 저금리와 주택 보유를 장려한 정책이 불씨를 키웠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민스키: 안정이 불안정을 낳습니다

주류 바깥에 있던 하이먼 민스키는 위기가 외부 충격이 아니라 호황 자체에서 자란다고 봤습니다. 그는 자금 조달을 세 단계로 나눴습니다. 벌어들이는 현금으로 원금과 이자를 다 갚을 수 있으면 헤지 금융, 이자는 내지만 원금은 계속 빌려서 막으면 투기적 금융, 이자조차 자산 가격 상승에 기대야 하면 폰지 금융입니다.

호황이 길어질수록 경제 전체의 구성은 헤지에서 폰지 쪽으로 조용히 이동합니다. 오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을 낮게 평가하게 만들고, 낮게 평가된 위험은 더 많은 빚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자산 가격이 조금만 꺾이면 폰지 구간에 있던 주체들이 한꺼번에 자산을 팔아야 하고, 그 매도가 다시 가격을 끌어내립니다. 민스키는 199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2008년 이후 그의 이름은 위기 논의의 표준 어휘가 됐습니다.

규제는 무엇을 고쳤고 무엇을 남겼을까요

위기 뒤에는 늘 제도가 따라옵니다. 1930년대 미국은 예금보험과 증권 규제를 만들었고, 2008년 이후에는 은행 자기자본과 유동성 기준을 높인 바젤 3, 미국의 도드프랭크법, 정기적인 스트레스 테스트가 자리 잡았습니다. 은행이 예전보다 두꺼운 완충 자본을 쌓게 된 것은 분명한 성과입니다.

그러나 남은 질문이 만만치 않습니다. 대마불사 문제가 실제로 해소됐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고, 규제가 강해진 은행 바깥으로 위험이 옮겨 가는 이른바 그림자금융의 비중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규제의 적정 수준을 두고도 답이 갈립니다. 한쪽은 자본 요건을 더 높여야 위기 비용을 사회가 떠안지 않는다고 보고, 다른 한쪽은 과도한 규제가 대출을 위축시켜 성장과 고용을 깎는다고 봅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입니다. 다음 위기는 지난 위기와 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규제는 언제나 마지막 전쟁을 기준으로 설계되니까요. 다음 과목에서는 이 자본과 위험이 국경을 넘을 때 벌어지는 일, 국제경제로 넘어갑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1929년 주가 폭락이 대공황이라는 장기 붕괴로 이어진 경로와 그 원인 논쟁을 정확히 서술한 것은 무엇일까요?
폭락 자체보다 예금보험이 없던 시절의 은행 연쇄 도산이 대출 관계와 신용 정보를 함께 지워 버린 것이 붕괴를 깊게 만들었습니다. 원인 진단은 프리드먼과 슈워츠의 통화 정책 실패론, 케인스 계열의 수요 붕괴론, 금본위제 족쇄론이 서로 다른 층을 짚고 있어 배타적이지 않으며, 금본위제를 먼저 벗어난 나라가 대체로 먼저 회복했다는 비교 연구가 있으므로 네 번째 보기는 방향이 반대입니다.
문제 2. 2008년 위기에서 증권화와 신용평가가 한 역할을 정확히 설명한 것은 무엇일까요?
증권화는 위험을 없애지 못하고 옮기고 흐렸을 뿐이며, 지역별 가격이 동시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전제가 무너지자 누가 무엇을 들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 자금 시장이 얼어붙었습니다. 발행자가 평가 수수료를 내는 구조에서 최고 등급이 널리 부여된 점도 반복 지적된 문제입니다.
문제 3.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이 말하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민스키는 자금 조달을 헤지와 투기적과 폰지로 나누고, 오래 이어진 안정이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 구성이 폰지 쪽으로 이동한다고 봤습니다. 위기의 씨앗이 호황 내부에 있다는 것이 요지이며, 폰지 금융은 자산 가격 상승에 의존하는 구조를 가리키는 분류 용어이지 사기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문제 4. 2008년 이후 금융 규제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는 무엇일까요?
바젤 3와 스트레스 테스트로 은행의 손실 흡수력이 높아진 것은 성과이지만, 규제가 촘촘해진 은행 밖으로 위험이 이동했고 대마불사 해소 여부도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자본 요건을 더 높이자는 견해와 대출 위축을 우려하는 견해가 함께 존재한다는 점까지 담아야 균형 잡힌 서술이 됩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위기 때 정부가 금융기관을 구제하지 않으면 시스템이 무너지고, 구제하면 다음 위험 추구를 부추깁니다. 이 딜레마를 줄이려면 구제의 조건을 어떻게 미리 정해 두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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