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학 3강. 실업률이 말해 주지 않는 것
일자리를 구하다 지쳐 포기하면 실업률이 내려갑니다. 통계가 좋아졌는데 사정은 나빠진 것이죠.
풀고 시작
실업자로 인정받기는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일이 없는 사람이 모두 실업자로 잡히지는 않습니다. 국제 기준상 실업자는 조사 기간에 일하지 않았고,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으며, 실제로 구직활동을 한 사람입니다. 세 조건을 모두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몇 달째 이력서를 넣다가 지쳐 잠시 손을 놓은 사람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빠지고, 이 구직 단념자가 늘면 실업률은 역설적으로 내려갑니다.
또 하나의 사각지대가 불완전 취업입니다. 조사 대상 주간에 수입을 목적으로 한 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됩니다. 원하는 만큼 일하지 못하는 사람과 전공과 무관한 자리에 임시로 머무는 사람이 모두 취업자 칸에 들어가는 것이죠. 그래서 실업률만 보지 말고 고용률, 곧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실제로 일하는 사람의 비율을 함께 봐야 합니다. 여기에 단념자와 불완전 취업자까지 포함해 넓게 잡은 확장 실업 지표를 보조로 발표하는 것이 오늘날의 표준 관행입니다.
세 가지 실업, 그리고 없앨 수 없는 몫
실업은 원인에 따라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마찰적 실업은 사람과 일자리가 서로를 찾는 데 걸리는 시간에서 생깁니다.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옮기는 과정의 공백이니, 오히려 노동시장이 살아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구조적 실업은 훨씬 무겁습니다. 산업이 저물거나 기술이 바뀌어 갖고 있는 숙련과 시장이 원하는 숙련이 어긋날 때 생기며, 경기가 좋아져도 잘 사라지지 않습니다. 폐광 지역의 광부에게 일자리가 많은 도시로 옮기라거나 다른 기술을 배우라고 말하기가 얼마나 잔인한지 떠올려 보면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경기적 실업은 불황 때 수요가 줄어 생기는 몫이고, 경기가 회복되면 함께 줄어듭니다.
앞의 두 종류는 경제가 아무리 좋아도 남습니다. 그래서 경기적 실업이 0일 때 남는 실업률을 자연실업률이라 부르고, 실업률 0을 정책 목표로 삼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다만 자연실업률은 직접 관측되지 않고 사후에 추정할 뿐이라, 지금 경제가 과열인지 아닌지 실시간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실무적 난점을 늘 안고 있습니다.
필립스 곡선이 무너진 10년
1958년 경제학자 윌리엄 필립스는 영국의 약 한 세기 치 자료를 뒤져 흥미로운 규칙을 찾아냅니다. 실업률이 낮은 해에는 임금 상승률이 높고, 실업률이 높은 해에는 낮았습니다. 이 역관계는 곧 물가와 실업의 상충 관계로 확장되어 정책 메뉴처럼 읽혔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조금 감수하면 실업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니, 정치인에게 이보다 매력적인 도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에 물가와 실업이 나란히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옵니다. 메뉴판에 없던 조합이 현실이 된 것이죠. 흥미로운 것은 이 붕괴가 사전에 예고됐다는 점입니다. 1960년대 후반 밀턴 프리드먼과 에드먼드 펠프스는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기 시작하면 임금 요구에 미리 반영하므로 상충 관계가 사라진다고 지적했습니다. 물가와 실업을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예상이 따라잡기 전 잠깐뿐이며, 장기적으로 경제는 자연실업률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후 필립스 곡선은 기대를 변수로 포함한 형태로 살아남았고, 단기 상충은 여전히 관측됩니다. 다만 최근 수십 년간 그 기울기가 눈에 띄게 평평해졌다는 실증이 쌓이면서 왜 그런지를 두고 논쟁이 진행 중이며, 이론이 반증으로 폐기되지 않고 수정되며 버티는 전형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청년 실업과 갈라진 노동시장
청년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보다 높은 것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경력이 없어 능력을 증명하기 어렵고, 첫 직장 선택의 실패 비용이 커 탐색 기간이 길어지며, 불황이 오면 신규 채용부터 먼저 얼어붙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흉터가 오래 간다는 점입니다. 불황기에 사회에 나온 세대의 임금이 여러 해 뒤까지 낮게 남는다는 연구가 여러 나라에서 반복 확인됐습니다.
여기에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겹칩니다. 보호와 임금이 두터운 내부 시장과 불안정한 외부 시장이 갈라져 있고, 두 시장 사이의 이동은 생각만큼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 구조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서 답이 정면으로 갈립니다. 고용 보호가 강할수록 기업이 채용을 꺼려 청년과 비정규직이 문 밖에 남는다는 진단이 한쪽에 있고, 보호를 걷어내면 전체가 불안정해질 뿐 좋은 일자리는 늘지 않으며 필요한 것은 훈련과 사회안전망이라는 진단이 다른 쪽에 있습니다. 최저임금의 고용 효과 논쟁도 같은 구도입니다. 데이비드 카드와 앨런 크루거가 1994년 뉴저지의 패스트푸드 매장을 조사해 최저임금 인상 뒤에도 고용이 줄지 않았다고 보고한 연구는 큰 파장을 일으켰고, 데이비드 노이마크와 윌리엄 워셔 등은 자료와 방법을 문제 삼아 반박했습니다. 이후 수백 편의 실증이 쌓였지만 효과의 크기와 조건에 대한 합의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인상 폭과 지역 임금 수준, 산업 구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만은 대체로 공유됩니다. 실업과 물가가 함께 요동치는 큰 파도의 정체는 다음 강에서 다룹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실업률이 낮은데도 사람들이 고용 사정이 나쁘다고 느끼는 나라가 있습니다. 지표와 체감이 어긋날 때 정책은 어느 쪽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