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2강. 환율: 돈의 값
환율은 두 나라 물가의 비율이기도 하고, 두 나라 금리의 승부이기도 하고, 결국은 사람들의 기대가 부딪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풀고 시작
숫자가 오르면 내 돈이 싸집니다
환율만큼 뉴스에서 자주 나오면서 자주 헷갈리는 숫자도 드뭅니다. 원인은 표기법에 있습니다. 한국은 달러 한 단위가 원화로 얼마인지를 씁니다. 그래서 1200에서 1400으로 오르면 달러가 비싸진 것, 곧 원화 절하입니다. 반대로 숫자가 내려가면 원화 절상이죠. 유로존은 반대 습관을 씁니다. 유로 한 단위가 달러로 얼마인지를 쓰기 때문에 숫자가 오르면 유로가 강해진 것입니다. 표기 방향만 바꿔도 해석이 정반대가 되니, 환율 기사를 읽을 때는 무엇이 분모이고 무엇이 분자인지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절하는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올리는 대신 수입 원자재와 해외여행 비용을 올립니다. 같은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호재이고 누군가에게는 악재인 셈입니다.
환율을 미는 세 개의 손
첫째는 금리차입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돈은 이자를 더 주는 통화로 흘러갑니다. 그런데 여기에 유명한 반전이 있습니다. 고금리 통화로 몰릴수록 그 통화는 지금 비싸지고, 시장은 미래에 그만큼 되돌아올 것을 가격에 반영합니다. 이론상 금리 우위는 예상 절하로 상쇄되어야 하는데, 실제 데이터에서는 이 관계가 잘 성립하지 않아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둘째는 경상수지입니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흐름이 크면 원화 수요가 늘죠. 셋째가 가장 사납습니다. 기대입니다. 환율은 자산 가격이라 오늘의 무역이 아니라 내일의 예상으로 움직입니다. 모두가 절하를 예상하면 미리 팔고, 그 매도가 절하를 실현시킵니다. 그래서 외환시장에서는 예언이 스스로 이루어지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셋 중 둘만 고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국제금융에서 가장 유명한 제약이 등장합니다. 불가능한 삼위일체(trilemma)입니다. 자유로운 자본 이동, 안정된 환율, 독립적인 통화정책. 이 셋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고 최대 둘까지만 고를 수 있다는 것이죠. 논리는 단순합니다. 자본이 자유롭게 드나드는데 환율을 묶어 두려면, 금리를 국내 경기가 아니라 환율 방어에 맞춰야 합니다. 통화정책의 독립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금리를 자유롭게 쓰고 싶으면 환율이 움직이는 것을 감수하거나 자본 이동을 통제해야 합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이 제약을 잔인하게 보여 줬습니다. 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달러에 사실상 고정된 환율을 유지한 채 단기 외채를 들여왔고, 자금이 방향을 바꾸자 외환보유액으로는 페그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해 7월 태국이 바트화 방어를 포기하면서 위기는 지역 전체로 번졌습니다. 고정환율은 무역과 투자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진짜 장점이 있지만, 충격이 왔을 때 환율 대신 고용과 임금이 조정을 떠맡는다는 대가를 치릅니다. 변동환율은 그 충격을 환율이 흡수해 주는 대신, 매일의 변동성과 수입물가 불안을 남깁니다. 어느 쪽이 낫다기보다 무엇을 포기할지의 선택입니다.
빅맥으로 환율을 재 봅니다
장기적으로 환율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전적 답이 구매력평가(purchasing power parity)입니다. 같은 물건이라면 어느 나라에서 사도 값이 같아야 하고, 다르면 차익거래가 그 차이를 지운다는 발상이죠. 이코노미스트지가 1986년부터 발표해 온 빅맥 지수는 이 아이디어를 햄버거 하나로 축약한 장난스러운 지표입니다. 미국에서 5달러, 어떤 나라에서 4000원이라면 적정 환율은 800원이라는 식입니다.
재미있지만 한계는 분명합니다. 햄버거 값에는 임대료와 인건비처럼 국경을 넘지 못하는 요소가 잔뜩 들어 있어서 차익거래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생산성이 낮은 나라일수록 서비스 물가가 체계적으로 싸지는 경향이 있어, 소득이 낮은 나라의 통화는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늘 저평가되어 보입니다. 그래서 빅맥 지수는 오늘의 환율을 맞히는 도구가 아니라, 명목 숫자와 실제 생활 물가가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를 보여 주는 눈금자로 쓰는 편이 정직합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 환율 위에서 각국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관세와 산업정책의 논쟁으로 넘어갑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환율이 급하게 흔들릴 때 정부가 개입해 방어하는 것은 옳을까요. 방어에 쓰이는 외환보유액과 금리는 결국 국내 경기와 맞바꾸는 값인데, 그 대가를 어디까지 치를 만한지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