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사고방식 1강.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공짜 점심을 먹은 사람은 있어도, 공짜로 만들어진 점심은 없습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무언가를 포기했습니다.
풀고 시작
술집이 발행한 계산서
19세기 미국 술집에는 "공짜 점심"이라는 간판이 흔히 걸려 있었습니다. 술 한 잔만 시키면 점심을 그냥 준다는 것이죠. 손님들은 횡재라고 좋아했지만 상술은 그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짭짤한 절인 고기와 치즈는 갈증을 부르고, 갈증은 술을 한 잔 더 팔았습니다. 점심값은 이미 술값 안에 조용히 들어 있었던 겁니다. 이 장면에서 나온 "세상에 공짜 점심 같은 것은 없다"는 문장은 하인라인의 1966년 소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구호처럼 반복되고, 밀턴 프리드먼이 1975년 자기 책 제목으로 삼으면서 경제학의 표어가 되었습니다. 이 한 문장이 말하는 것은 인색함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값이 붙어 있고, 그 값은 대개 돈이 아닌 형태로 청구된다는 사실입니다.
희소성은 가난과 다릅니다
값이 붙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적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희소성(scarcity)이고, 경제학의 모든 문제는 여기서 자랍니다. 주의할 점은 희소성이 가난과 다른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희소성은 절대량이 아니라 욕구 대비 상대적인 부족을 뜻합니다. 물은 지구에 넘치지만 사막의 한복판에서는 가장 희소한 물건이 됩니다. 자산이 조 단위인 사람도 하루 24시간 앞에서는 여전히 선택을 강요당합니다. 그래서 희소성은 가난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조건 자체입니다. 부자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고, 다만 무엇이 희소한지가 바뀔 뿐입니다.
로빈스가 학문의 국경을 다시 그었습니다
19세기까지 경제학은 대체로 "부의 학문"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마셜은 1890년 『경제학 원리』에서 경제학을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연구라고 넓게 표현했죠. 판을 바꾼 사람은 런던정경대의 라이오넬 로빈스였습니다. 그는 1932년의 에세이에서 경제학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여러 용도를 가진 희소한 수단과 목적 사이의 관계로서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요. 이 정의의 힘은 경제학을 소재가 아니라 시각으로 바꿨다는 데 있습니다. 공장이나 주식시장만 경제학의 영토가 아니라, 희소한 것을 두고 선택이 벌어지는 모든 곳이 영토가 된 것입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이 정의가 너무 넓어 사실상 모든 인간 행동을 경제학으로 삼켜 버린다는 비판, 그리고 경제학을 형식 논리로 밀어붙여 제도와 역사를 시야에서 밀어냈다는 비판이 지금도 이어집니다.
선택에는 반드시 값이 붙습니다
희소성이 낳는 것은 선택이고, 선택이 낳는 것은 트레이드오프(trade-off)입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덜 얻는 관계죠. 오늘 저녁의 두 시간을 운동에 쓰면 그 두 시간은 공부에서 빠져나갑니다. 국가 예산에서 국방을 늘리면 복지나 교육에서 그만큼이 줄어듭니다. 여기서 중요한 태도가 하나 생깁니다. 정책 토론에서 "이 정책은 좋은 정책입니다"라는 주장은 절반짜리라는 것입니다. 좋은 점만 말한 사람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셈입니다. 경제학적으로 훈련된 질문은 늘 같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포기합니까, 그리고 그 포기는 누구의 몫입니까.
무엇인가와 무엇이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경제학 논쟁을 읽는 안경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진술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실증적 진술은 세상이 어떠한지를 말하고 원칙적으로 데이터로 검증됩니다. 규범적 진술은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가치 판단을 담습니다. 최저임금을 예로 들어보죠. "최저임금을 올리면 저숙련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실증적 진술이고,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규범적 진술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앞의 실증 질문조차 아직 열려 있다는 점입니다. 카드와 크루거가 1994년 뉴저지의 패스트푸드점을 비교한 연구에서 고용 감소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한 뒤 논쟁이 격화됐고, 반대로 유의미한 고용 감소를 보고한 연구도 꾸준히 쌓였습니다. 그래서 정직한 답은 이렇습니다. 효과의 크기와 조건은 여전히 다투는 중이며, 설령 실증이 정리되더라도 "그래서 올려야 하는가"는 데이터가 아니라 가치가 답합니다. 사실에서 당위가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는 흄의 오래된 경고가 여기서도 유효한 것이죠. 이제 왜 경제학이 돈의 학문이 아니라 선택의 학문인지 보이실 겁니다. 돈은 선택을 재는 흔한 자가 될 뿐이고, 자를 대지 않는 선택에도 값은 붙습니다. 그 값의 정확한 이름이 다음 강의 주제인 기회비용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로빈스의 정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연애, 종교, 투표까지 경제학의 대상이 됩니다. 이 확장은 학문의 힘일까요, 아니면 다른 학문이 더 잘 설명할 영역까지 넘본 월권일까요.
이전: 경제학 서가 · 다음: 경제적 사고방식 2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