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학 1강. GDP: 한 나라를 숫자 하나로
한 나라의 1년을 숫자 하나로 줄여 보겠다는 야심. 그 숫자를 설계한 사람부터 "이걸로 국민의 행복을 재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풀고 시작
대공황이 낳은 숫자
1930년대 초 미국 정부는 황당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얼마나 무너졌는지 잴 자가 없었습니다. 의회는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에게 국민소득 추계를 맡겼고, 1934년 그가 제출한 보고서가 오늘날 GDP의 조상이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보고서 안에 이미 경고가 들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국민소득 측정치로부터 한 나라의 후생을 추론하기는 어렵다고, 만든 사람이 직접 못을 박았습니다.
국내총생산(GDP)은 일정 기간 한 나라 안에서 새로 생산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 총합입니다. 여기서 "안에서"가 국적이 아니라 영토를 뜻하고, "최종"이 중간재의 이중 계산을 막습니다. 밀가루 값과 빵 값을 둘 다 더하면 밀가루를 두 번 세는 셈이니, 각 단계가 새로 얹은 부가가치만 합산하는 것이죠.
세 방향에서 같은 값
같은 숫자에 이르는 길이 세 갈래라는 점이 GDP의 우아한 대목입니다. 누가 얼마를 만들었나(생산), 누가 얼마를 썼나(지출), 누가 얼마를 벌었나(소득)를 각각 더하면 원리상 같은 값이 나옵니다. 누군가의 지출은 반드시 누군가의 소득이기 때문입니다. 실무에서 가장 자주 쓰는 것은 지출 접근이고, 소비 + 투자 + 정부지출 + (수출 − 수입)이라는 익숙한 식이 여기서 나옵니다. 수입을 빼는 이유는 무역 적자가 나빠서가 아니라, 앞의 세 항목에 이미 수입품 구매가 섞여 들어가 있어 국내 생산분만 남기려는 회계적 조정이기 때문입니다.
명목이 늘어도 실질은 제자리
작년 GDP가 100이고 올해가 105라면 경제가 5% 성장한 걸까요. 물가가 5% 올랐다면 만들어진 물건의 양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그해 가격으로 계산한 명목 GDP와, 기준연도 가격으로 다시 계산해 물가 변동을 걷어낸 실질 GDP를 구분합니다. 둘의 비율이 GDP 디플레이터이고, 뉴스에서 말하는 성장률은 거의 항상 실질 기준입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는 나라의 명목 GDP가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 구분이 왜 목숨줄인지 바로 감이 옵니다.
세지 않는 것들, 그럼에도 쓰는 이유
GDP의 빈칸 목록은 길고 뼈아픕니다. 집에서 하는 가사노동과 돌봄은 시장을 거치지 않아 0으로 잡히니, 같은 일을 남에게 돈 주고 맡기면 갑자기 GDP가 늘어납니다. 환경은 더 얄궂습니다. 기름이 유출되면 방제 비용과 복구 공사가 모두 생산으로 잡혀 GDP를 밀어 올립니다. 평균값이라 분배를 못 보고, 여가와 안전과 건강 같은 삶의 질도 담기지 않습니다. 로버트 케네디가 1968년 캔자스대 연설에서 국민총생산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만 빼고 모든 것을 잰다고 꼬집은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왜 계속 쓸까요. 정의가 국제적으로 표준화되어 나라 사이 비교가 가능하고, 분기마다 꾸준히 나오며, 고용·세수·물가와 통계적으로 강하게 맞물려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GDP는 행복계가 아니라 생산활동 계기판이며, 계기판을 행복계로 착각한 쪽이 잘못한 것이지 계기판이 고장 난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1인당 GDP, 구매력평가, 그리고 대안들
나라 크기를 지우려면 인구로 나눕니다. 그런데 시장환율로 환산한 1인당 GDP는 물가 수준이 다른 나라들을 부당하게 비교합니다. 같은 3달러로 한 나라에서는 국수 한 그릇을, 다른 나라에서는 세 그릇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각국의 물가를 반영해 같은 장바구니 기준으로 환산하는 구매력평가(PPP)를 함께 봅니다. 이코노미스트지가 1986년부터 장난스럽게 발표해 온 빅맥 지수가 이 발상의 대중판입니다.
대안 지표도 여럿입니다. 유엔개발계획이 1990년 도입한 인간개발지수(HDI)는 소득에 기대수명과 교육을 묶었고, 부탄의 국민총행복은 아예 다른 축을 세웠으며, 불평등을 함께 보려고 지니계수를 병기하는 방식도 흔합니다. 다만 대안 지표에는 공통의 약점이 있습니다. 건강과 교육과 소득에 각각 몇 점씩 줄지는 결국 누군가의 가치 판단이고, 가중치를 바꾸면 순위가 흔들립니다. 하나의 완벽한 숫자를 찾기보다 여러 계기판을 나란히 읽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흐름입니다. 물가라는 다음 계기판은 다음 강에서 뜯어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GDP를 대체할 단일 지표를 만들자는 제안이 계속 나옵니다. 건강과 교육과 환경에 몇 점씩 배분할지 결정할 권한을 누가 가져야 할까요. 그리고 그 가중치가 정치적으로 정해진다면, 그 지표는 GDP보다 덜 왜곡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