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와 경제사상 1강.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의 오해
『국부론』 전체를 통틀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딱 한 번 나옵니다. 그 한 번이 250년째 오독되고 있습니다.
풀고 시작
핀 공장에서 시작된 질문
1776년, 글래스고에서 도덕철학을 가르쳤던 한 스코틀랜드 학자가 『국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를 내놓습니다. 그가 던진 질문은 지금 들어도 낯설지 않습니다. 어떤 나라는 왜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왜 가난할까요. 당시 정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금과 은을 많이 쌓아 두면 부자 나라라는 것이죠. 그래서 수출은 장려하고 수입은 막았습니다. 스미스는 이 통념을 뒤집습니다. 한 나라의 부는 금고에 쌓인 금은이 아니라 국민이 해마다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총량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GDP로 나라를 재는 사고방식의 뿌리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산량은 무엇이 늘릴까요. 스미스는 유명한 핀 공장으로 답합니다. 혼자 핀을 만들면 하루 한 개도 벅찹니다. 그런데 철사를 뽑는 사람, 자르는 사람, 뾰족하게 가는 사람으로 공정을 열여덟 갈래로 쪼개자 열 명이 하루 4만 8천 개를 만들어 냅니다. 분업이 숙련을 키우고 전환 시간을 없애고 기계 발명을 자극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가 따라옵니다. 분업의 정도는 시장의 크기에 제한된다는 것입니다. 마을 대장간은 분업할 수 없고, 세계를 상대하는 공장만 분업할 수 있습니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그의 논거는 여기서 나옵니다.
그 문장이 실제로 놓인 자리
이제 문제의 표현입니다. 스미스가 말한 것은 이런 뜻이었습니다. 상인은 애국심이 아니라 위험 회피 때문에 낯선 나라보다 자기 나라에 투자하기를 선호하고, 그 사익 추구의 결과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늘어난다는 것이죠. 특정 상황에 대한 제한된 관찰이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라는 강령이 아닙니다. 정작 스미스 본인은 기업가를 꽤 냉정하게 봤습니다. 같은 업종 사람들은 오락을 위해서도 좀처럼 모이지 않지만 일단 모이면 대화는 대중을 상대로 한 음모나 가격 인상 방안으로 끝난다고 적었습니다. 담합을 경계한 문장이죠. 그는 국방과 사법, 도로와 항만, 그리고 분업이 노동자의 정신을 무디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한 공교육을 국가의 몫으로 인정했습니다. 스미스를 무정부적 시장주의자로 읽는 것은 그가 쓴 다른 수백 쪽을 지우는 독법입니다. 물론 반대 방향의 과잉 교정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가 중상주의적 규제와 특권 독점을 강하게 비판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도덕감정론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
스미스의 첫 책은 경제학이 아니라 윤리학이었습니다. 1759년의 『도덕감정론』은 첫 문장부터 인간이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고 못 박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처지에 나를 옮겨 놓는 공감 능력을 갖고 있고, 마음속에 공정한 관망자라는 가상의 심판을 세워 자기 행동을 평가한다는 것이죠. 19세기 독일 학자들은 이 책과 국부론이 모순된다며 "아담 스미스 문제"라는 이름까지 붙였지만, 오늘날 연구자 다수는 두 책을 한 체계의 두 면으로 봅니다. 시장의 이기심은 법과 관습과 상호 공감이라는 도덕적 토대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것이죠. 그는 죽기 직전까지 도덕감정론을 고쳐 썼습니다. 버린 책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리카도와 맬서스, 고전파가 남긴 숙제
스미스 이후 고전파는 두 사람의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리카도는 1817년 비교우위를 정식화해, 모든 재화를 더 싸게 만드는 나라조차 무역으로 이득을 본다는 반직관적 결론을 이끌어 냈습니다. 무역의 근거는 생산비의 절대 수준이 아니라 기회비용의 차이라는 것이죠. 오늘날에도 무역 이론의 출발점입니다. 맬서스는 1798년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로 늘고 식량은 산술급수로 는다며 빈곤의 불가피성을 주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예측은 빗나갔습니다. 농업 생산성 혁명과 출산율 하락이 그의 계산을 무너뜨렸으니까요. 다만 산업혁명 이전의 오랜 역사에는 그의 구도가 상당히 잘 들어맞았다는 재평가도 있습니다.
두 사람은 곡물법을 두고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지주의 지대가 산업의 발목을 잡는다고 본 리카도는 곡물 수입 자유화를 주장했고, 맬서스는 농업 보호를 옹호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맬서스가 총수요 부족으로 경제 전체가 침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입니다. 당대에는 소수설로 밀렸지만, 한 세기가 훌쩍 지난 뒤 케인스는 맬서스를 자신의 선구자로 불러냅니다. 고전파가 끝내 풀지 못한 숙제는 가치론이었습니다. 상품의 가치를 투입 노동으로 설명하려던 시도가 곳곳에서 삐걱거렸고, 1870년대 한계효용 혁명이 그 자리를 대체합니다. 그런데 같은 숙제를 정반대 방향으로 밀고 나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음 강의 주인공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스미스는 시장의 효율과 도덕의 토대를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그중 절반만 인용하게 됐을까요. 인용하는 쪽의 필요가 원문을 고르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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