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와 경제사상 3강.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100년 논쟁
같은 대공황을 보고 한 사람은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그 돈이 애초에 이 사달을 냈다"고 했습니다.
풀고 시작
두 사람이 마주 앉은 1930년대
1930년대 초 런던정경대의 젊은 오스트리아 학자 하이에크는 케임브리지의 스타 케인스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서평을 씁니다. 케인스는 냉담하게 받아쳤고, 논쟁은 학술지를 오가며 몇 해 동안 이어졌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전시에는 케임브리지에서 함께 야간 화재 감시 당번을 섰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입니다. 다만 그들이 본 대공황의 원인은 정반대였습니다.
케인스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공장도 노동자도 그대로인데 물건이 안 팔립니다. 문제는 공급 능력이 아니라 지출입니다. 고전파는 저축이 곧 투자가 된다고 가정했지만, 현실에서 저축과 투자는 다른 사람이 다른 이유로 결정합니다. 불안해진 모두가 동시에 허리띠를 졸라매면 서로의 소득이 사라져 결국 다 같이 가난해집니다. 저축의 역설이죠. 게다가 투자는 정밀한 계산이 아니라 야성적 충동이라 부른 자생적 낙관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어서, 그 충동이 꺾이면 금리를 낮춰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1936년 『일반이론』의 처방이 나옵니다. 민간 지출이 비었으면 정부가 그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이에크의 반론: 아무도 전체를 모른다
하이에크의 반론은 두 층입니다. 먼저 경기순환론입니다. 그가 속한 오스트리아학파는 호황기의 인위적 저금리가 사람들을 잘못된 장기 투자로 끌어들여 생산 구조를 왜곡시켰다고 봤습니다. 불황은 그 왜곡을 되돌리는 조정 과정이므로, 부양책은 조정을 미루고 왜곡을 키운다는 것이죠. 이 견해는 대공황기 청산주의로 흘러 인기를 잃었고, 하이에크 본인도 훗날 물가가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국면까지 손 놓고 두자고 했던 당시 자신의 입장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더 오래 살아남은 것은 두 번째 층, 지식의 문제입니다. 1945년 논문에서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계획을 세우려면 누가 무엇을 얼마나 원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 지식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의 답은 어디에도 통째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백만 명에게 흩어진 조각난 지식이고, 상당수는 말로 표현되지도 않는 현장의 감각입니다. 가격은 그 흩어진 지식을 한 숫자로 압축해 전달하는 신호 체계라는 것이 그의 통찰입니다. 주석 가격이 오르면 세계의 모든 주석 사용자가 이유를 몰라도 절약하기 시작합니다. 중앙계획은 이 신호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죠. 1944년 『노예의 길』은 여기서 정치로 넘어갑니다. 경제를 계획하려면 결국 사람들의 목적까지 통일해야 하므로 자유가 잠식된다는 경고입니다. 다만 그 책에서 하이에크가 최소한의 소득 보장이나 사회안전망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점은 자주 생략됩니다.
전성기와 반전
전후 30년은 케인스의 시대였습니다. 서구는 높은 성장과 낮은 실업을 누렸고, 정부가 총수요를 미세 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졌습니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사이의 안정적 교환관계를 보여 준 필립스 곡선은 정책 메뉴판처럼 쓰였습니다. 하이에크는 그 시기 내내 학계의 변방에 있었습니다.
반전은 1970년대에 옵니다. 실업과 물가가 동시에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메뉴판이 찢어졌습니다. 이미 1968년에 프리드먼과 펠프스는 사람들이 물가 상승을 예상하기 시작하면 그 교환관계가 사라진다고 예고한 터였습니다. 1976년 루카스는 정책이 바뀌면 사람들의 행동 규칙 자체가 바뀌므로 과거 데이터로 추정한 모형으로 새 정책을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이에크는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며 무대 중앙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해 둡시다. 통화주의자 프리드먼과 오스트리아학파 하이에크는 정부 개입에 회의적이라는 점에서 겹치지만 경기순환의 설명은 서로 다릅니다.
오늘의 논쟁은 그 구도의 연장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팬데믹에서 각국 정부는 대규모 재정을 풀었습니다. 케인스의 귀환처럼 보였지만 논쟁은 곧바로 재개됐습니다. 재정 지출 1원이 소득을 얼마나 늘리는지를 뜻하는 재정승수의 크기부터 학자마다 추정이 갈립니다. 정책금리가 바닥에 붙어 있고 유휴 설비가 많은 깊은 불황에서는 승수가 크다는 실증이 여럿 있고, 경제가 정상 가동 중이고 부채가 많은 국면에서는 효과가 작거나 금리 상승으로 민간 투자를 밀어낸다는 실증도 여럿 있습니다. 유로존 재정위기 때 긴축을 옹호하는 근거로 널리 인용되던 국가부채와 성장률 연구가 계산 오류와 표본 선택 문제로 반박됐던 일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정부 부채가 무한정 늘어도 괜찮다는 증거 또한 없습니다.
그래서 정직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어느 한쪽이 논쟁에서 이겼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케인스는 시장이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지 못하는 국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줬고, 하이에크는 그 국면을 고치겠다고 나선 계획자 역시 필요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두 지적은 서로를 지우지 않습니다. 오늘 뉴스에서 부양과 긴축, 규제와 자율을 두고 벌어지는 말싸움을 보실 때, 그 밑에 이 100년짜리 질문이 깔려 있다는 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시장도 완벽하지 않고 계획자도 전지하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개입의 범위를 정해야 할까요. 실패의 비용이 더 작은 쪽을 고르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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