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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읽는 법 4강. 고전은 누가 정하나

고전 목록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교실과 출판사와 상 심사장에서 손으로 적은 것입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문학에서 쓰는 정전(canon)이라는 말은 원래 어디서 온 표현일까요?
그리스어 카논은 갈대에서 온 곧은 막대, 곧 재는 도구를 뜻했고 여기서 기준이라는 의미가 나왔습니다. 이후 교회가 정경을 가려내는 데 쓰면서 종교적 무게가 붙었고, 문학이 그 말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목록에는 언제나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정전이라는 말이 자와 척도에서 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재는 도구가 있으면 재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우리가 고전이라 부르는 목록은 대체로 세 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학교의 교과 과정, 출판사의 문고본 시리즈, 그리고 문학상입니다. 여기서 반복해서 실리고 반복해서 가르쳐진 작품이 살아남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영문학은 원래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이 아니었습니다. 신사의 교양은 그리스어와 라틴어였고, 자국어 소설을 강의실에서 다룬다는 발상 자체가 늦게 등장했습니다. 영문학이 정규 교과로 제도화되는 과정이 19세기 영국의 대중 교육 확대 및 식민지 통치와 얽혀 있었다는 연구가 축적돼 있고, 이 해석의 범위를 두고는 지금도 논쟁이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정전은 시간이 저절로 걸러낸 결과가 아니라 제도가 매년 다시 만드는 목록입니다.

정전 전쟁이라 불린 싸움

1980년대와 90년대 미국 대학에서 이 문제가 폭발했습니다. 필독서 목록이 백인 남성 서구 작가로 채워져 있다는 지적이 커지자, 스탠퍼드 대학은 1988년 서구 문명 필수 강좌를 개편해 비서구권과 여성 작가를 넣기로 결정합니다. 이 결정은 전국적 논쟁으로 번졌고 언론은 정전 전쟁(canon wars)이라 불렀습니다.

한쪽에는 문학의 기준이 정치에 밀려나면 위대함을 판별할 능력 자체를 잃는다는 반론이 있었습니다. 해럴드 블룸은 『서구 정전』(The Western Canon, 1994)에서 확장론자들을 원한의 학파라 부르며 작품의 미학적 힘을 옹호했습니다. 다른 쪽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목록이 이미 정치의 산물인데 그것을 고치는 일만 정치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죠.

이 논쟁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명단 교체보다 복권에 가까웠습니다. 케이트 쇼팽의 『각성』(The Awakening, 1899)은 출간 당시 혹평 속에 묻혔다가 1960년대 이후 재발견되어 지금은 미국 소설의 주요 작품으로 읽힙니다. 조라 닐 허스턴의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Their Eyes Were Watching God, 1937)는 저자가 무명으로 세상을 떠난 뒤 잊혔다가, 앨리스 워커가 1975년 발표한 에세이를 계기로 되살아났습니다. 사라졌던 작품이 돌아왔다는 것은, 사라짐 자체가 작품의 수준 때문이 아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취향은 순수한 개인의 것일까요

여기서 사회학이 끼어듭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짓기』(La Distinction, 1979)에서 취향이 계급과 얼마나 촘촘히 얽혀 있는지를 방대한 조사로 보여 주었습니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책을 읽는가는 순수한 감성의 문제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자라면서 축적한 문화자본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취향은 다시 계급의 경계선을 표시하는 표지가 됩니다. 이 논의의 사회학적 배경은 사회학 서가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적은 불편하지만 유용합니다. 어려운 책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 안에 얼마만큼이 즐거움이고 얼마만큼이 신호인지 물어볼 수 있게 해 주니까요. 다만 부르디외를 극단으로 밀면 모든 감동이 계급 행동으로 환원되는데, 그 환원에 저항하는 독서 경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반론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많이 팔린 책과 좋은 책

베스트셀러는 문학이 아니라는 통념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대중 극장에서 표를 팔아 먹고살던 흥행 작가였고, 디킨스의 소설은 잡지에 연재되며 다음 회를 기다리는 독자를 만든 상업적 성공작이었습니다. 반대로 당대에 폭발적으로 팔렸지만 지금은 제목조차 남지 않은 책이 훨씬 많습니다. 시간이 걸러 준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시간은 스스로 거르지 않고, 계속 읽고 가르치고 번역하는 사람들이 거릅니다. 노벨문학상 역시 기준이 아니라 하나의 관점입니다. 초기 수십 년 동안 여성 수상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비유럽권 수상자는 더 드물었으니까요.

그래서 실용적인 결론은 이렇습니다. 남이 만든 목록을 출발점으로 쓰되 종착점으로 삼지 마세요. 자기만의 목록을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좋았던 책의 뒤를 캐서 그 작가가 읽은 책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번역가와 편집자의 이름을 따라가고, 마음에 걸리는 지역과 시대를 하나 정해 세 권만 연달아 읽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100쪽에서 재미없으면 덮으세요. 완독의 의무감은 독서를 가장 빨리 죽이는 방법입니다.

세계문학 서가는 여기서 끝납니다. 서사시에서 출발해 소설의 탄생을 지나 여기까지 왔는데, 마지막 강이 하필 목록을 의심하는 이야기인 것이 마음에 듭니다. 1강에서 없는 사람 이야기에 우리가 왜 흔들리는지 물었죠. 그 흔들림은 목록이 보증해 주지 않습니다. 책을 펴 든 사람에게서만 일어납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본문이 정전에 대해 내린 핵심 진단은 무엇인가요?
정전은 교과 과정과 문고본 시리즈와 문학상이라는 제도를 통해 반복 재생산되는 목록입니다. 시간의 자동 여과나 판매량 누적, 작가들의 합의로 만들어진다는 설명은 그 제도적 과정을 지워 버립니다.
문제 2. 조라 닐 허스턴의 작품이 복권된 과정이 보여 주는 바는 무엇인가요?
허스턴의 소설은 잊혔다가 앨리스 워커의 1975년 에세이를 계기로 되살아나 지금은 널리 읽힙니다. 작품이 그대로인데 평가가 뒤집혔다는 사실은, 애초의 망각이 작품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문제 3.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논의가 취향에 대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구별짓기는 취향이 순수한 개인 감성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축적된 문화자본의 산물이며 계급 경계를 표시한다고 봅니다. 다만 모든 감동을 계급 행동으로 환원하는 데는 반론이 있다는 점도 함께 짚어야 합니다.
문제 4. 베스트셀러와 문학성의 관계에 대한 본문의 정리는 무엇인가요?
셰익스피어와 디킨스는 상업적 성공작을 낸 작가였고, 반대로 당대의 베스트셀러 다수는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판매량은 가치의 반대말도 예고도 아니며, 계속 읽고 가르치고 번역하는 실천이 생존을 결정합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1. 여러분이 지금까지 읽은 책으로 열 권짜리 목록을 만든다면 무엇이 들어갈까요. 그리고 그 목록에서 빠진 지역, 시대, 성별을 적어 보면 어떤 편향이 드러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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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지 · 궁금하면 모던지 GitHub ·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