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1강. 형식을 부수기로 한 사람들
1922년 한 해에 나온 소설 한 권과 시 한 편이, 문학을 읽는 법 자체를 바꿔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풀고 시작
1918년 이후 세상은 다르게 보였습니다
4년 동안 유럽은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참호와 기관총과 독가스 앞에서, 용감한 주인공이 시련을 겪고 성장한다는 이야기의 뼈대는 우스워졌습니다. 전쟁만이 아니었습니다. 도시는 전차와 전신과 영화관과 신문 호외로 하루를 채웠고, 한 사람이 하루에 처리하는 자극의 양이 한 세대 만에 크게 불어났습니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스스로도 모르는 것에 떠밀린다고 했고, 베르그송은 시계가 재는 시간과 우리가 실제로 사는 시간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경험이 달라졌는데 그것을 담는 그릇은 19세기 것 그대로였습니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고, 모든 것을 아는 화자가 친절히 설명해 주고, 인물의 성격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소설이죠. 모더니스트들의 결론은 단호했습니다. 그릇이 맞지 않으면 그릇을 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롭게 하라, 그리고 잘라 내라
이 태도의 구호를 만든 사람이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입니다. 그가 되풀이한 새롭게 하라(Make it new)는 1934년 에세이집 제목으로 굳었는데, 정작 출처는 중국 고전에서 그가 끌어온 구절입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라는 옛 명문을 20세기의 표어로 재활용한 셈이니, 이 구호부터가 인용의 재조립이었습니다.
파운드가 앞장선 이미지즘(Imagism)의 규칙은 짧습니다. 설명하지 말고 이미지를 놓아라, 장식하는 형용사를 지워라, 메트로놈이 아니라 악구의 리듬으로 써라. 힐다 두리틀(H.D.)의 압축된 시편들이 이 원칙의 본보기가 되었죠. 브라질에서도 1922년 상파울루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던 예술 주간을 열어 유럽 양식을 그대로 베끼는 일을 그만두자고 외쳤습니다. 유럽 형식을 거부하는 대신 씹어 삼키겠다는 선언은 6년 뒤 오스바우지 지 안드라지의 「식인 선언」(1928)에서 정식화됩니다. 형식을 부수자는 충동은 런던과 파리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을 그대로 옮길 수 있을까요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라는 말은 원래 문학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 『심리학의 원리』에서 의식이 토막이 아니라 강물처럼 이어진다고 쓰면서 나온 표현이죠. 이 말을 소설에 처음 갖다 붙인 사람은 비평가 메이 싱클레어였고, 대상은 도로시 리처드슨(Dorothy Richardson)의 연작 『순례』(Pilgrimage)였습니다. 정작 리처드슨 본인은 자기 글에 붙은 이 강물 비유를 평생 싫어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도 프랑스 소설가 에두아르 뒤자르댕의 『월계수는 베어졌다』(1887)에서 배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기법의 핵심은 순서를 바꾸는 데 있습니다. 논리적 순서 대신 연상의 순서로 문장을 잇는 것이죠. 그래서 독자는 설명을 받는 대신 재구성을 떠맡습니다. 이 부담이 모더니즘 소설이 어렵다는 인상의 정체입니다.
하루가 700쪽이 되는 이유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 1922)는 1904년 6월 16일 더블린의 하루를 다룹니다. 뼈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인데, 십 년을 떠도는 영웅 자리에 광고 외판원 레오폴드 블룸이 앉아 있습니다. 각 장은 문체를 갈아입습니다. 신문 헤드라인으로, 교리문답으로, 영어 산문의 역사를 흉내 내는 식으로요. 난해함은 장식이 아니라 논증입니다. 평범한 사람의 하루가 서사시와 같은 무게를 가진다는 주장을 형식으로 증명하려 한 것이죠.
세상은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처음 찍어 준 사람은 파리에서 서점을 하던 실비아 비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잡지 연재분이 문제가 되어 1921년 뉴욕에서 편집자 마거릿 앤더슨과 제인 힙이 외설로 유죄를 받았고, 합법 출판이 가능해진 것은 1933년 울지 판사가 이 책을 음란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한 뒤입니다. 이 판결은 작품을 통째로 놓고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워, 이후 검열 재판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인용으로 지은 폐허
같은 해 T. S. 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가 나옵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첫 행으로 시작하는 이 장시는 성서와 단테와 셰익스피어와 우파니샤드의 조각을 여러 언어로 이어 붙였습니다. 엘리엇은 직접 주석까지 달았는데, 그 주석이 진지한 안내인지 반쯤 농담인지는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원고를 절반 가까이 잘라 낸 사람은 파운드였고, 엘리엇은 그를 더 나은 장인이라 부르며 헌사를 남겼습니다.
읽는 방법은 하나가 아닙니다. 전쟁 뒤 유럽 문명의 진단서로 읽는 독법이 오래 우세했지만, 엘리엇 자신은 훗날 이것이 인생에 대한 리듬 있는 투덜거림이었다고 말해 사적인 위기의 기록이라는 독법에 힘을 실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 정하기보다, 한 편의 시가 두 크기로 동시에 읽힌다는 사실을 즐기는 편이 낫습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 부수기가 하루라는 그릇 안에서 어떻게 정교해지는지를 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읽기 어렵게 쓴 작품이 결과적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을 골라낸다면, 그 어려움은 예술적 필연일까요 아니면 문턱일까요. 두 가지가 겹칠 수는 없을까요.
이전: 19세기 문학 4강 · 다음: 모더니즘 2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