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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문학 2강. 러시아가 소설로 물은 것

소설을 가장 늦게 시작한 나라가, 소설로 가장 큰 질문을 던졌습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바흐친이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핵심으로 꼽은 다성성은 무엇을 뜻할까요?
바흐친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작가의 결론이 인물들의 말을 정리해 버리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신을 부정하는 논리와 믿는 논리가 각각 최대한의 힘을 얻은 채로 끝까지 부딪칩니다. 여러 목소리와 말투가 뒤섞이는 문제는 그가 따로 다룬 이어성이라는 개념 쪽입니다.

총살 직전에 멈춘 사형과 두꺼운 잡지

러시아 소설이 유럽을 놀라게 하기까지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푸시킨이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1833)을 내고 고골이 「외투」(1842)로 가난한 하급 관리를 문학에 들여놓은 뒤에야 판이 열렸으니, 발자크와 거의 동시대의 일이죠.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는 문장은 흔히 도스토옙스키의 말로 인용되지만 출처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 문학이 자란 조건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검열입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1849년 급진 독서 모임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 집행 직전에 감형 통보를 받습니다. 이후 시베리아에서 4년을 복역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의 소설 인구가 되었죠. 또 하나는 두꺼운 잡지라 불리던 월간지 연재 체제입니다. 『죄와 벌』(1866), 『전쟁과 평화』(1865~1867 연재), 『안나 카레니나』(1875~1877)가 모두 같은 잡지 『러시아 통보』에 실렸습니다. 매달 마감이 돌아오는 구조가 그 긴 분량과 다중 서사를 낳았습니다. 다만 잡지의 힘이 늘 작가 편은 아니어서,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부분을 두고 편집자와 부딪쳐 따로 출간해야 했습니다.

작가가 대답해 주지 않는 소설

『죄와 벌』은 초반에 이미 살인이 벌어집니다. 궁금한 것은 누가 죽였는가가 아니라, 비범한 인간에게는 선을 넘을 권리가 있다는 라스콜니코프의 논문 같은 확신이 어떻게 그를 갉아먹는가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 확신을 어설프게 만들지 않고 반대편 인물들에게도 똑같이 강한 논리를 주었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의 이반이 동생 알료샤에게 자기 논거를 펼치는 대목이 정점입니다. 세계의 조화가 아이 한 명의 고통 위에 세워진다면 그 입장권을 정중히 돌려주겠다는 말과, 뒤이어 나오는 대심문관 이야기는 신을 옹호하는 어떤 논증보다 오래 기억됩니다. 실제로 작가는 편지에서 이 반론의 힘을 걱정하며 뒤에서 답하겠다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갈립니다. 조시마 장로와 알료샤의 응답이 이반을 이겼다고 읽는 독법이 하나이고, 미하일 바흐친처럼 어느 목소리도 최종 판결을 얻지 못한 채 소설이 끝난다고 보는 독법이 다른 하나입니다. 바흐친은 이 구조를 다성성(полифония, 다성음악에서 빌려온 말)이라 부르며, 저자가 인물 위에 서지 않는 소설이 여기서 처음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는 지금도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규모 자체가 주장이 될 때

레프 톨스토이(1828~1910)는 다른 방식으로 컸습니다.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 전쟁기의 러시아를 무대로 오백 명이 넘는 인물을 움직이는데, 정작 톨스토이는 1868년 글에서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유럽식 장르의 틀에 자기 책을 넣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죠. 이유는 마지막에 붙은 역사론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나폴레옹이 역사를 움직였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전투의 향방은 명령이 아니라 수십만 명의 사소한 결정이 합쳐진 결과이고, 지휘관은 자기가 조종한다고 착각할 뿐이라는 것이죠. 많은 독자가 건너뛰는 이 부분이 실은 그 방대한 분량의 근거입니다. 개인이 안 보일 만큼 넓게 찍지 않으면 이 주장을 보여 줄 수 없으니까요.

『안나 카레니나』는 초점을 좁혀 두 갈래를 나란히 놓습니다. 사회의 규칙과 자기 욕망 사이에서 갈리는 안나의 이야기와, 시골에서 노동과 신앙의 답을 더듬는 레빈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죠. 결말은 널리 알려져 있으니 여기서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헨리 제임스는 톨스토이의 이런 소설을 느슨하고 헐렁한 괴물이라고 불렀는데, 칭찬 반 불평 반이었습니다. 정작 톨스토이는 말년에 종교적 전향을 겪은 뒤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에서 자기 대작들을 상류층의 오락이라며 부정합니다. 아내 소피야가 그 원고를 여러 차례 옮겨 적어 완성을 도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 얄궂은 결말이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의 발명

안톤 체호프(1860~1904)는 의사였고, 의학은 본처이고 문학은 애인이라고 농담처럼 적은 편지가 남아 있죠. 그는 앞의 두 거인과 정반대로 큰 사건도, 사상의 대결도, 결론도 없앴습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899)처럼 그의 단편은 인물이 자기 삶을 문득 다르게 보게 되는 한순간에서 멈춥니다. 진실은 대사에 있지 않고 말하지 않은 자리, 즉 서브텍스트(subtext)에 있습니다.

희곡에서는 이것이 사고를 냈습니다. 『갈매기』는 1896년 초연에서 관객의 야유를 받고 참패합니다. 배우들이 대사에 없는 감정을 연기할 방법을 몰랐던 것이죠. 2년 뒤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스타니슬랍스키가 다시 올린 공연이 성공하면서 근대 연극의 문법이 바뀝니다. 재미있게도 두 사람은 끝까지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체호프는 『벚꽃 동산』(1904)이 희극이라고 우겼고 연출가는 비극으로 무대에 올렸습니다. 몰락하는 지주 가족을 보며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는 지금도 연출마다 갈립니다.

누구의 목소리가 남았는가

이 시기 러시아 문학이 남성 대문호의 목록처럼 기억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카롤리나 파블로바 같은 시인이 『이중생활』(1848)에서 사교계 여성의 낮과 밤을 갈라 그렸지만 오래 잊혔고, 여성의 글쓰기는 번역과 필사와 편집이라는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흡수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영어권 독자가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처음 만난 것도 콘스턴스 가넷이라는 번역가를 통해서였습니다. 무엇이 정전이 되는가는 작품의 힘만이 아니라 누가 옮기고 누가 실었는가에도 달려 있다는 이야기죠. 다음 강에서는 같은 세기에 아예 자기 문장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던 나라, 미국으로 갑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두꺼운 잡지 연재 체제가 러시아 장편소설의 형태에 남긴 흔적으로 알맞은 것은 무엇인가요?
죄와 벌,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가 모두 월간지 연재로 나왔고, 매달 독자를 붙잡아야 하는 구조가 긴 분량과 다중 서사를 떠받쳤습니다. 잡지의 힘이 늘 작가 편은 아니어서 톨스토이는 편집자와 부딪쳐 마지막 부분을 따로 내야 했습니다.
문제 2.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이 펼치는 반론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이반의 반란은 신의 존재를 논증으로 부정하는 대신, 무고한 아이의 고통을 값으로 치른 세계 질서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작가가 이 논리를 일부러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 다성성이라 불리는 구조의 실제 모습입니다.
문제 3. 전쟁과 평화의 방대한 분량과 톨스토이의 역사관은 어떻게 이어지나요?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이 전쟁을 조종했다는 통념을 부정하고, 지휘관은 자기가 움직인다고 착각할 뿐이라고 썼습니다. 개인이 작아 보일 만큼 넓은 화폭이 있어야 이 주장이 눈에 보이므로, 규모 자체가 논증의 일부가 됩니다.
문제 4. 체호프의 벚꽃 동산을 둘러싼 유명한 이견은 무엇인가요?
체호프는 이 작품을 희극이라 불렀지만 스타니슬랍스키는 몰락의 비극으로 연출했고, 두 사람은 끝내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서브텍스트에 무게를 둔 그의 극이 하나의 정답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1. 작가가 자기 결론을 인물에게 강요하지 않는 소설은 독자를 더 자유롭게 할까요, 아니면 방치하는 것일까요.
  2. 번역가와 편집자가 정전을 만든다면, 우리가 위대하다고 부르는 목록은 무엇의 목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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