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탄생 4강. 감정이 형식을 이겼을 때
이성의 시대를 끝낸 것은 더 나은 논증이 아니라, 논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었습니다.
풀고 시작
규칙이 지겨워졌습니다
18세기 후반의 유럽 문단에는 지켜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시에는 시에 어울리는 고상한 어휘가 따로 있었고, 비극과 서사시에는 각각의 격식이 있었으며, 고대인이 세운 규칙을 얼마나 잘 따랐는지가 평가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 격식을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프랑스혁명은 이성이 설계한 질서가 순식간에 공포로 뒤집히는 장면을 보여 주었고, 공장과 도시는 살던 풍경을 통째로 갈아엎었습니다. 낭만주의(Romanticism)는 이 어긋남 위에서 시작됩니다.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계산과 규칙이 아니라 감정과 상상력과 개인의 내면, 인간이 다 담을 수 없는 자연에 있다고 본 것이죠. 계몽을 부정했다기보다, 계몽이 남겨 둔 빈칸을 파고들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시골 사람의 말로 시를 쓰겠다는 선언
1798년 영국에서 얇은 시집 하나가 저자 이름 없이 나옵니다. 윌리엄 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함께 낸 『서정 가요집』(Lyrical Ballads)이었습니다. 첫 자리에는 콜리지의 「노수부의 노래」가 실렸습니다. 신천옹을 쏴 죽인 뒤 저주에 시달리는 뱃사람 이야기를 옛 민요 가락으로 풀어낸 기괴한 시였죠. 진짜 폭탄은 1800년 재판에 워즈워스가 붙인 서문이었습니다. 그는 시를 강렬한 감정이 저절로 흘러넘치는 것이라 정의하면서, 시골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말을 골라 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시의 소재도 영웅과 신에서 거지와 버려진 여자 같은 사람들로 내려왔습니다. 무엇을 시로 쓸 수 있는가와 어떤 말로 쓸 수 있는가, 두 개의 문이 한꺼번에 열린 셈이죠. 다만 콜리지는 나중에 『문학 평전』(1817)에서 친구의 언어론에 반론을 폈습니다. 낭만주의 안에서도 합의는 없었던 것이죠.
독일에서 번진 열병
영국보다 앞서 감정의 반란이 터진 곳은 독일이었습니다. 1770년대의 질풍노도(Sturm und Drang) 운동인데, 여기서 나온 결정적 작품이 이십 대 중반의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1774)입니다. 앞 강에서 본 서간체 형식을 그대로 가져와, 한 청년이 이룰 수 없는 사랑과 갑갑한 사회 앞에서 무너져 가는 과정을 편지로만 보여 줍니다. 결말을 짚어야 뒷이야기가 이어지니 미리 알려 드리자면, 베르테르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반응은 문학의 범위를 넘었습니다. 청년들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파란 상의에 노란 조끼를 입고 다니는 유행이 번졌고, 이 책이 모방 자살을 불렀다는 논란이 당대부터 따라붙었습니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가 1974년에 붙인 베르테르 효과라는 용어가 여기서 나왔죠. 다만 당시 통계로 인과를 확인하기는 어렵고, 소문이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괴테는 이 열풍에서 빠져나와 평생을 『파우스트』(Faust)에 붙들려 지냈습니다. 1부는 1808년에 냈고 2부는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831년에야 완성해 이듬해 유고로 나왔으니, 한 작품을 붙잡고 60년 가까이 산 셈입니다. 파우스트의 무한한 갈망이 죄인지 위대함인지를 두고 지금도 해석이 갈립니다.
열여덟 살 여름이 만든 괴물
1816년 여름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전해에 폭발한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의 재가 하늘을 덮은 탓이었고, 사람들은 이 해를 여름 없는 해라고 부릅니다. 제네바 호숫가 별장에 갇혀 지내던 일행이 각자 괴담을 하나씩 지어 보자는 내기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열여덟 살 메리 셸리가 내놓은 이야기가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입니다. 1818년 익명으로 나왔고, 이름이 표지에 오른 것은 1823년 재판부터였습니다. 어머니는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아버지는 급진 사상가 윌리엄 고드윈이었으니 시대의 논쟁 한복판에서 자란 사람이었죠.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괴물이 나와서가 아니라 괴물이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은 피조물이 왜 나를 만들어 놓고 책임지지 않느냐고 창조자에게 따져 묻는 순간, 공포물은 윤리 논쟁이 됩니다. 창조의 수단이 주문이 아니라 당대의 과학이라는 점 때문에, SF 작가 브라이언 올디스는 이 작품을 과학소설의 출발점으로 꼽았습니다. 낭만주의가 떠받든 무한한 창조 의지를, 낭만주의 한복판에서 나온 소설이 정면으로 심문한 것이죠.
숭고, 그리고 민족이라는 발견
낭만주의자들이 자연을 사랑했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그들이 끌린 것은 예쁜 풍경이 아니라 숭고(the sublime), 곧 인간을 압도하는 두려운 규모였습니다. 에드먼드 버크는 1757년의 저작에서 아름다움과 숭고를 갈라놓으며 숭고의 뿌리에 공포가 있다고 보았고, 칸트는 『판단력 비판』(1790)에서 감각을 넘어서는 크기 앞에서 오히려 이성을 자각하는 경험으로 숭고를 설명했습니다. 안개 낀 산정에 홀로 선 뒷모습을 그린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이 이 감각의 그림판이죠. 그런데 자연과 감정으로 향하던 시선은 또 하나의 대상을 발견합니다. 헤르더는 한 민족의 고유한 정신이 그 언어와 민요와 옛이야기에 담겨 있다고 주장했고, 그림 형제는 1812년부터 독일 민담을 수집해 묶어 냈습니다. 이 열정은 억눌린 언어와 문화를 되살리는 힘이 되기도 했지만, 19세기를 지나며 우리 민족만이 순수한 정신을 갖는다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자원으로도 쓰였습니다. 감정을 복권시킨 운동이 정치와 만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죠. 다음 강부터는 이 격정에 등을 돌리고 세상을 관찰하겠다고 나선 리얼리즘을 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창조자가 자기 피조물에게 책임이 있다는 프랑켄슈타인의 질문은, 지금 우리가 만드는 기술 앞에서 어떻게 다시 물어야 할까요.
- 잊힌 옛이야기를 모아 정체성을 세우는 일은 어디까지가 문화의 복원이고 어디부터가 배제의 시작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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