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시와 비극 4강. 신곡에서 셰익스피어까지
단테는 영원을 다루는 시를 라틴어가 아니라 시장에서 쓰던 말로 썼고, 그 결정이 유럽 문학의 언어 지도를 바꿔 놓았습니다.
풀고 시작
서른다섯에 길을 잃은 남자
『신곡』은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로 시작합니다. 화자는 지옥과 연옥을 지나 천국에 이르는 여행을 하는데, 그 설계가 강박적으로 정교합니다. 세 편으로 나뉘고, 각 편이 33곡이며, 서곡 하나를 더해 정확히 100곡이 됩니다. 운율도 앞 연의 가운뎃줄이 다음 연의 바깥줄과 맞물리는 삼운구법(terza rima)이라, 시가 사슬처럼 끊기지 않고 이어집니다. 삼위일체의 3과 완전수 10의 제곱이 형식 자체에 박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우주적 구조 안을 채운 것은 뜻밖에도 당대의 정치입니다. 단테(1265~1321)는 피렌체의 당파 싸움에서 밀려 사형 선고를 받고 평생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내쫓은 정적들과 부패한 교황들을 지옥의 구체적인 자리에 배치했습니다.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시로 산 자에게 복수한 셈입니다. 지옥과 연옥의 안내자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이고, 천국에서는 어려서 만나 일찍 떠나보낸 베아트리체가 그 자리를 넘겨받습니다. 원제는 그냥 『희극』이었고, 여기에 '신성한'을 붙인 것은 후대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장에서 쓰던 말로 영원을 쓰다
당시 진지한 학문과 문학의 언어는 라틴어였습니다. 속어는 시장과 부엌의 말이었죠. 단테는 그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속어의 우수성을 논한 『속어론』을 정작 라틴어로 썼다는 점입니다. 라틴어를 읽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으니까요. 이 선택의 파장은 큽니다. 언어는 문학이 도달한 높이만큼 격이 올라가고, 그 문학이 표준어의 기준이 되며, 표준어는 훗날 국민 문학과 국민 국가의 재료가 됩니다. 단테와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가 쓴 토스카나 말이 이탈리아어의 뼈대가 된 경로가 그렇습니다. 이 장면은 지난 강에서 본 동아시아의 한문과 자국어 사이의 줄다리기와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기사도 로망스, 유럽의 첫 대중 서사
한편 궁정과 저잣거리에서는 다른 종류의 이야기가 인기를 끕니다. 처음에는 『롤랑의 노래』처럼 봉신의 충성과 전투를 노래하는 무훈시였습니다. 그런데 12세기 후반 크레티앵 드 트루아가 아서왕 궁정을 무대로 랜슬롯과 성배 이야기를 쓰면서 무게 중심이 옮겨 갑니다. 이제 기사는 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여인을 향한 사랑을 증명하려고 모험을 떠나고, 서사의 관심은 전투 결과에서 내면의 시험으로 이동합니다. 같은 무렵 활동한 마리 드 프랑스는 짧은 운문 이야기 모음 『레』를 남겼는데, 이름이 전하는 최초급 여성 작가 가운데 하나이고 사랑과 규범의 충돌을 냉정하게 다뤘습니다. 두 세기 뒤의 크리스틴 드 피장은 『여성들의 도시』(1405)에서 여성을 깎아내리는 당대 문헌을 조목조목 반박했고, 글을 팔아 생계를 꾸린 유럽 최초의 여성 문인으로 꼽힙니다.
로망스는 인쇄술을 만나 진짜 베스트셀러 산업이 됩니다. 아리오스토의 『광란의 오를란도』(1516) 같은 걸작도 나왔지만, 동시에 양산품이 쏟아졌습니다. 이 과잉이 무엇을 부르는지는 다음 과목 첫 강에서 봅니다. 로망스를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자기가 기사라고 믿게 된 시골 노인이 등장하니까요.
셰익스피어가 발명한 것
셰익스피어(1564~1616)가 대단한 이유를 줄거리에서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남에게서 빌려 왔습니다. 그가 바꾼 것은 인물이 자기 생각을 스스로 듣는 방식입니다. 무대 위에 혼자 남은 인물이 결심하고, 그 결심을 의심하고, 의심하는 자신을 다시 관찰합니다. 그 결과 관객은 인물의 결론이 아니라 결론에 이르는 흔들림을 보게 됩니다.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셰익스피어가 근대적 인간의 내면을 발명했다고까지 말했지만, 그 견해는 과장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몽테뉴의 『수상록』을 비롯해 같은 시기 유럽 곳곳에서 자기를 들여다보는 글쓰기가 자라고 있었으니까요.
언어도 함께 봐야 합니다. 그는 각운 없는 약강 5보격, 곧 무운시(blank verse)를 주로 썼습니다. 규칙적인 심장 박동 같은 이 리듬은 자연스러운 영어 말소리에 가까우면서도, 필요할 때 박자를 어긋내 인물의 동요를 드러냅니다. 왕과 귀족은 운문으로, 하층 인물은 산문으로 말하게 하는 구별도 즐겨 썼습니다.
세 칸짜리 서랍과 저작 논쟁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희극, 사극, 비극으로 나누는 익숙한 분류는 작가 본인이 아니라 1623년 동료 배우들이 펴낸 퍼스트 폴리오의 편집 결정입니다. 이 책이 없었다면 『맥베스』를 포함해 상당수 작품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다만 서랍이 세 칸뿐이라 잘 안 맞는 작품이 생깁니다. 웃기지만 뒷맛이 씁쓸한 이른바 문제극들, 그리고 만년의 『템페스트』처럼 비극의 재료로 화해에 이르는 작품들은 후대 비평가들이 로맨스라는 이름을 따로 붙여 다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작 논쟁을 과장 없이 정리하겠습니다. 시골 출신에 대학도 안 나온 사람이 그 작품을 썼을 리 없다는 의심은 19세기 중반 베이컨 설로 시작했고, 옥스퍼드 백작 설은 1920년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학계의 압도적 다수는 스트랫퍼드의 배우 겸 극작가 셰익스피어를 저자로 봅니다. 그를 시기해 "벼락출세한 까마귀"라 비난한 1592년의 동시대 기록이 있고, 벤 존슨은 폴리오 헌시에서 그를 "한 시대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 불렀으며, 무엇보다 그와 매일 같이 무대에 섰던 동료들이 그의 이름으로 전집을 엮었습니다. 대안 후보 가운데 유력하다는 옥스퍼드 백작은 1604년에 죽어 이후 초연된 작품들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논쟁이 흥미로운 지점은 진위가 아니라, 위대한 글은 신분 높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오래된 편견이 얼마나 끈질긴지를 보여 준다는 데 있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위대한 글은 교육받은 상류층에게서 나온다는 편견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요?
- 작품을 희극과 비극처럼 몇 개의 서랍으로 나누는 관행은 읽기를 돕나요, 아니면 안 맞는 작품을 보이지 않게 만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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