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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3강.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 세계

카프카의 세계에서 무서운 것은 벌레로 변한 일이 아니라, 아무도 왜냐고 묻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변신의 첫 장면에서 가장 낯선 지점으로 흔히 지목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소설의 충격은 사건이 아니라 반응에 있습니다. 그레고르 자신도 지각 걱정부터 하고 가족은 곧 수입 문제로 넘어가죠. 원인을 묻지 않는 세계가 카프카의 기본 설정이며, 그 침묵이 독자를 더 불안하게 만듭니다.

설명해 주지 않는 첫 문장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프라하에서 독일어로 쓴 유대인 작가였습니다. 체코어 도시에 사는 독일어 사용자이자, 독일어 사회에서는 유대인이었죠.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자리가 그의 문장에 그대로 배어 있습니다. 그의 글을 체코어로 처음 옮긴 사람이 저널리스트 밀레나 예센스카(Milena Jesenská)였다는 사실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카프카가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는 한쪽 목소리만 남은 채로도 그의 대표적인 산문으로 읽힙니다.

『변신』(Die Verwandlung, 1915)은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아침 흉측한 벌레로 변해 깨어나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그는 원인을 궁금해하지 않고 출근 시간을 걱정합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여서 곧 누가 돈을 벌 것인가로 대화가 옮겨 가죠. 카프카는 출판사에 편지를 보내 표지에 그 벌레를 절대 그리지 말라고 요청했습니다. 형태를 확정하는 순간 이야기가 괴물 이야기로 쪼그라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어야 그 상황이 유지된다는 원칙이죠.

죄목을 알려주지 않는 재판

『심판』(Der Process)에서 요제프 K는 어느 아침 체포됩니다. 그런데 무슨 죄인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는 일상생활을 계속하면서 재판을 받고, 변호사와 화가와 사제를 찾아다니며 절차를 배웁니다. 배울수록 사건은 커지는데 죄목은 여전히 나오지 않죠. 소설 속에 삽입된 짧은 우화 「법 앞에서」는 이 구조를 압축합니다. 한 시골 사람이 법의 문 앞에서 평생 입장을 기다리는 이야기인데, 문지기는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아니라고 할 뿐입니다.

카프카가 이런 세계를 상상만으로 지어낸 것은 아닙니다. 그는 노동자 재해보험공사 직원으로 십수 년을 일했습니다. 낮 동안 산업재해 서류와 보상 등급과 항소 절차를 다뤘고, 밤에 소설을 썼죠. 절차가 목적을 잊고 스스로 굴러가는 광경을 그는 직장에서 매일 봤던 셈입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같은 시기에 관료제의 합리화를 분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태워 달라던 원고

카프카는 1924년 마흔한 번째 생일을 한 달 앞두고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전에 낸 것은 『변신』을 비롯한 얇은 책 몇 권뿐이었고, 장편 세 편은 모두 미완성 원고로 남아 있었죠. 그는 친구 막스 브로트(Max Brod)에게 남긴 쪽지에서 원고를 읽지 말고 남김없이 태우라고 했습니다.

브로트는 태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생전에 이미 그럴 생각이 없다고 카프카에게 말해 두었다고 회고했죠. 그는 원고를 정리하고 순서를 정해 『심판』(1925)과 『성』(1926)을 냈고, 카프카가 『실종자』라 부르던 미완성 장편에는 아메리카라는 제목을 붙여 1927년에 내놓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카프카는 브로트가 만든 카프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갈리는 판단이 있습니다. 고인의 명시적 유언을 어긴 배신인가, 세계문학을 구한 결단인가. 태울 생각이었다면 직접 태울 수 있었는데 태우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브로트라면 안 태우리라는 것을 알고 맡긴 것이라 보는 독법도 있습니다. 브로트가 남긴 카프카 자료의 소유권을 둘러싼 다툼은 21세기까지 이어져 2016년 이스라엘 대법원 판결로 정리되었습니다.

카프카적이라는 형용사

카프카에스크(kafkaesque)라는 말은 이제 사전에 올라 있습니다. 다만 자주 잘못 쓰입니다. 서류가 밀려 짜증 나는 상황이면 다 카프카적이라고 부르는 식이죠. 원래 뜻은 더 좁고 무섭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절차에 걸려든 사람이 저항하다가 결국 자기가 유죄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납득해 가는 상태입니다. 밖에서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라, 안에서 자라는 죄책감이 핵심이죠.

독법은 여러 갈래로 갈립니다. 브로트는 신을 잃은 인간의 종교적 탐색으로 읽었고, 정신분석 계열은 끝내 부치지 못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근거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축으로 삼습니다. 정치적 독법은 관료제와 소수자의 처지를 강조하죠. 반대로 카프카의 힘은 알레고리를 거부하는 데 있으니 무엇의 상징인지 묻지 말라는 입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세우는 순간 이 작품들은 작아집니다.

이 계보는 곧장 실존주의 문학으로 이어집니다.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1942)에 실린 카프카론은 부조리를 설명하지 않고 그대로 견디는 태도를 논했습니다. 이 글은 점령기 검열 때문에 초판에서 빠졌다가 뒤의 판본에 부록으로 실렸습니다. 세계가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다면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르트르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습니다. 이 감각은 유럽 남성 작가들만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모래 구덩이에 갇혀 끝없이 모래를 퍼내는 남자를 그린 아베 고보의 『모래의 여자』(1962)가 있고, 감시와 서류가 사람을 조여 오는 독재 체제를 평생 써 온 헤르타 뮐러가 있습니다. 이유를 물을 수 없는 절차의 이야기는 여러 언어에서 다시 쓰였습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유 없는 세계 대신, 이상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대륙으로 갑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카프카가 출판사에 변신의 표지와 관련해 요청한 것은 무엇일까요?
형태를 확정하는 순간 이 이야기는 괴물 이야기로 좁아집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태가 유지되어야 상황의 불안이 살아남기 때문에 카프카는 삽화를 막았습니다. 이 요청 자체가 그의 작법을 보여 주는 자료로 자주 인용됩니다.
문제 2. 심판이 그리는 재판의 구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요제프 K는 구금되지 않고 출근도 계속합니다. 그런데 알아볼수록 사건은 커지고 죄목은 나오지 않죠. 법 앞에서 우화의 문지기가 안 된다고 하지 않고 지금은 아니라고만 말하는 것처럼, 절차가 목적 없이 이어지는 구조 자체가 이 소설의 정체입니다.
문제 3. 카프카 원고가 세상에 나온 경위로 옳은 것은 무엇일까요?
브로트는 원고를 태우라는 부탁을 받고도 정리해 심판과 성과 실종자를 사후에 냈습니다. 그가 생전에 이미 안 태우겠다고 말해 두었다는 회고 때문에, 카프카가 그 사실을 알고 맡겼다는 독법도 함께 논의됩니다.
문제 4. 카프카적이라는 말의 본래 뜻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한 행정 지연은 이 말의 원뜻이 아닙니다. 핵심은 밖에서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라 안에서 자라나는 죄책감이며, 저항하던 사람이 어느새 자기 잘못을 납득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짜증이 아니라 공포에 가깝습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작가가 태우라고 한 원고를 남긴 브로트의 선택을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만약 오늘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유언과 공공의 이익 중 무엇이 앞서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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