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읽는 법 2강. 누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나
소설에서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 지금 말하고 있는 그 사람입니다.
풀고 시작
카메라를 어디에 세울 것인가
『모비 딕』(Moby-Dick, 1851)은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 다오"로 시작합니다. 이 짧은 한마디가 하는 일은 소개가 아니라 감금입니다. 독자는 그 순간부터 이슈메일의 눈 뒤에 갇혀서, 그가 보지 못한 것은 끝내 보지 못하고 그의 흥분과 편견은 고스란히 옮겨 받습니다. 시점(point of view)은 이야기의 장식이 아니라 독자에게 어떤 자리를 배정할지 정하는 설계입니다.
| 시점 | 독자가 얻는 것 | 독자가 잃는 것 |
|---|---|---|
| 1인칭 | 목소리의 밀착감과 즉각적인 신뢰 | 화자가 모르는 사실 전부 |
| 3인칭 제한 | 한 인물의 내면과 바깥 풍경 동시에 | 다른 인물들의 속마음 |
| 전지적 | 모든 머릿속과 시대 전체의 조망 | 독자가 스스로 추리할 여지 |
전지적 시점은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그랬듯 19세기 사실주의의 기본값이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이 자리가 흔들립니다. 대체 누가 그렇게 다 안다는 말인가, 그 목소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의심이 소설가들 사이에 퍼졌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 말을 믿어도 될까요
1961년 웨인 부스는 『소설의 수사학』에서 신뢰할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기법 자체는 훨씬 오래됐지만, 이름이 생기자 독자들이 그 틈을 의식적으로 겨냥하게 됐죠. 판별의 단서는 화자의 주장과 그가 무심코 흘리는 사실 사이의 어긋남입니다.
이시구로 가즈오의 『남아 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 1989)에서 집사 스티븐스는 자신이 품위 있는 직업 생활을 했다고 담담하게 회고합니다. 그런데 그가 근거로 꺼내는 일화들이 하나씩 그 말을 배신합니다. 독자는 화자의 문장을 읽으면서 동시에 문장 너머를 읽게 되고, 이 이중 독서가 이 소설의 슬픔을 만듭니다. 나보코프의 『롤리타』(Lolita, 1955)에서 험버트 험버트는 눈부신 문체로 자기 범죄를 변론하는데, 문장에 홀리는 순간 독자는 자기가 지금 누구 편에 서 있는지 점검하게 됩니다. 추리소설 중에는 화자 자체가 트릭인 작품도 있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1926년에 낸 문제작이 대표적인데, 이 작품만큼은 아무 정보 없이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서술자와 인물이 한 문장에 겹칠 때
같은 내용을 세 가지로 적어 보면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망했다"는 직접화법이고, "그는 자기가 망했다고 생각했다"는 간접화법입니다. 그런데 3인칭 서술 한복판에 인용 부호도 없이 "망했다, 이제 어쩌지"가 툭 들어오면 그것이 자유간접화법(free indirect discourse)입니다. 서술자의 문법과 인물의 목소리가 한 문장에 포개지는 것이죠.
제인 오스틴은 『엠마』(Emma, 1815)에서 이 기법을 능란하게 씁니다. 서술자가 엠마의 확신을 엠마의 어투로 옮겨 적을 때, 독자는 엠마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 동시에 엠마를 조금 위에서 내려다봅니다. 공감과 아이러니가 같은 문장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것, 이것이 이 기법의 마술입니다.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 1857)에서 이 방식을 밀어붙여 소설의 표준 문법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국어는 주어를 자주 생략하고 어미가 태도를 실어 나르기 때문에 이 겹침이 매끄럽게 일어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번역서를 읽을 때 문장이 갑자기 인물 쪽으로 기우는 느낌이 든다면 그 자리를 의심해 보세요.
정보를 쥔 사람이 판단을 만듭니다
시점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려면 같은 사건을 여러 입으로 말하게 하면 됩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덤불 속」(藪の中, 1922)은 살인 사건 하나를 두고 관련자들이 차례로 진술하는데, 진술들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1950년 이 단편을 같은 작가의 「라쇼몽」과 합쳐 영화로 옮긴 뒤 이 구조는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증언이 엇갈려 진실이 확정되지 않는 상황을 라쇼몽 효과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토니 모리슨은 『빌러비드』(Beloved, 1987)에서 시점을 인물들 사이로 옮겨 가며, 한 사람의 언어로는 도저히 담기지 않는 기억을 여러 목소리에 나눠 담았습니다.
그래서 시점 선택은 미학적 취향에 그치지 않습니다. 누구의 눈을 빌려줄 것인가는 누구를 온전한 사람으로 대할 것인가와 붙어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점의 같은 문장을 두고도 비평가들은 전혀 다른 것을 읽어 냅니다. 다음 강에서는 렌즈를 바꿔 끼워 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여러분이 겪은 갈등을 상대방의 1인칭 시점으로 다시 써 본다면, 어느 대목에서 문장이 가장 쓰기 어려워질까요. 그 어려움이 시점에 관해 알려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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