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문학 3강. 새 나라의 문장 찾기
정치적 독립은 1776년에 끝났지만, 문학의 독립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더 걸렸습니다.
풀고 시작
미국 책을 누가 읽느냐는 조롱
1820년 영국의 한 평론가가 지구의 사방 어디에서 누가 미국 책을 읽느냐고 썼습니다. 무례했지만 사실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국제 저작권 협정이 없어 출판사가 영국 소설을 공짜로 찍어 팔았고, 디킨스를 헐값에 사는 시장에서 무명의 자국 작가가 인세를 요구하기는 어려웠죠. 이 구조는 1891년에야 정리됩니다. 돌파구는 다른 데서 왔습니다. 랠프 월도 에머슨이 1837년 하버드에서 한 「미국의 학자」 강연은 유럽의 학문을 오래 들었으니 이제 우리 발로 걷자는 요구였고, 훗날 지적 독립선언이라 불립니다. 여기서 자란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는 제도와 전통보다 개인의 직관을 앞세웠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호숫가 오두막의 2년을 기록한 『월든』(1854)이 그 실천편이죠.
목록으로 쓴 민주주의
월트 휘트먼(1819~1892)은 인쇄공 출신이었습니다. 1855년 그는 자기 돈으로 얇은 시집을 찍었는데, 속표지에 저자 이름이 없고 대신 셔츠 차림의 초상만 실렸습니다. 『풀잎』(Leaves of Grass) 초판, 시 열두 편이었죠. 충격은 내용보다 형태였습니다. 그는 정해진 운율과 각운을 버리고 성경 번역문 같은 긴 호흡의 자유시(free verse)를 썼고, 직업과 사람과 사물을 끝없이 나열했습니다. 목수와 창녀와 대통령이 같은 문장 구조에 나란히 놓이면 형식 자체가 위계 없는 사회를 흉내 냅니다. 민주주의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처럼 생긴 문장을 만든 셈이죠. 에머슨이 위대한 경력의 출발에 인사를 보낸다고 편지하자 그는 허락도 없이 그 문장을 다음 판 책등에 금박으로 박았습니다. 그는 평생 이 한 권을 고쳐 쓰며 판을 거듭했고, 남북전쟁 중에는 병원에서 부상병을 돌보며 『북소리』(1865)를 썼습니다. 몸과 성을 정면으로 다룬 탓에 1882년 보스턴에서 판매 중지 압박도 받았습니다.
실패한 뒤 백 년 만에 돌아온 고래
허먼 멜빌(1819~1891)은 스물한 살에 포경선을 탔고 남태평양에서 배를 이탈해 섬에 머문 경험을 『타이피』(1846)로 써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웃이 된 너새니얼 호손과 사귀며 그는 훨씬 큰 것을 노렸고, 그 결과가 호손에게 헌정된 『모비딕』(Moby-Dick, 1851)입니다.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 달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소설의 모양을 계속 배신합니다. 고래를 분류하는 백과사전 장이 나오고, 희곡처럼 무대 지시가 붙고, 설교와 철학 논고가 끼어듭니다. 책은 팔리지 않았고 멜빌은 문단에서 사라져 세관에서 일하다 죽습니다. 부활은 1920년대에 왔습니다. 전기와 연구가 나오고 미완성 원고 『빌리 버드』가 1924년에 나오면서, 세계대전을 겪은 세대가 흰 고래를 쫓다 배를 통째로 거는 아합에게서 자기 시대를 읽어 냈습니다. 읽는 방법은 하나가 아닙니다. 산업 문명의 광기로 읽기도 하고, 여러 인종의 선원을 태운 배를 미국의 축소판으로 읽기도 하며, 끝내 알 수 없는 것 앞에 선 인간의 우화로 읽기도 합니다.
서랍에서 나온 1800편
같은 시기 매사추세츠의 작은 도시에서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거의 발표하지 않고 시를 썼습니다. 생전에 활자가 된 것은 열 편 안팎이고 그마저 편집자가 손을 봤습니다. 죽은 뒤 여동생이 서랍에서 발견한 원고는 1800편에 가까웠고, 상당수는 종이를 접어 실로 꿰맨 묶음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1890년의 첫 시집은 편집자들이 줄표를 쉼표로 바꾸고 각운을 다듬고 제목까지 붙여 내놓았고, 원형 복원은 1955년 토머스 존슨의 판본에 이르러서입니다. 디킨슨에게는 형식이 곧 내용이라 이 차이가 큽니다. 찬송가의 익숙한 박자에 어긋나는 각운을 섞고 문장을 줄표로 끊어 숨을 멎게 하는 방식이 확신 없는 사유의 속도 그 자체입니다. 은둔에 대한 해석도 갈립니다. 오랫동안 병이나 실연으로 설명되었지만,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비평은 발표와 사교라는 남성 문단의 회로를 거부한 선택으로 읽죠. 휘트먼이 밖으로 뻗었다면 디킨슨은 안으로 조였으니,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정반대 방향에서 밀어붙인 셈입니다.
노예제가 문학에 낸 시험
새 나라의 문장을 찾는다는 말은, 사람을 재산으로 삼는 나라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미국인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 이야기』(1845)는 노예 서사(slave narrative)의 대표작입니다. 이 책 앞에 붙은 백인 폐지론자들의 서문은 예의가 아니라 필요였습니다. 노예였던 사람이 이런 문장을 썼을 리 없다는 의심을 미리 막아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이 책의 중심에는 몰래 읽고 쓰기를 배우는 장면이 놓입니다. 더글러스는 1855년의 두 번째 자서전에서 남의 보증 없이 자기 목소리로 다시 씁니다.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은 폭발적으로 팔리며 폐지 여론을 움직였습니다. 링컨이 저자를 만나 이 큰 전쟁을 일으킨 작은 여인이라 했다는 일화는 근거가 확실치 않습니다. 제임스 볼드윈은 1949년 글에서 흑인을 고통받는 성자로만 그리는 감상성이 인간을 지운다고 비판했고, 톰이라는 이름이 굴종의 멸칭이 된 사정도 여기 얽힙니다. 그래서 함께 읽어야 할 책이 해리엇 제이콥스의 『어느 노예 소녀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1861)입니다. 필명으로 나온 데다 내용이 가혹해 오랫동안 소설로 의심받았지만 20세기 후반 연구로 저자와 사실이 확인되었죠. 노예 서사가 남성의 탈출기로만 기억될 때 무엇이 빠지는지를 이 책이 보여 줍니다. 다음 강에서는 대서양 건너편에서 말 자체를 의심한 시인들을 만납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당대에 실패한 책이 백 년 뒤 걸작이 된다면, 작품의 가치는 작품 안에 있는 것일까요 읽는 시대에 있는 것일까요.
- 한 나라의 문학이 그 나라의 가장 부끄러운 제도를 다루는 방식은, 무엇을 기준으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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