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탄생 1강. 소설은 패러디에서 태어났습니다
근대 소설의 첫 장면은 위대한 선언이 아니라, 유행 소설을 실컷 비웃는 농담이었습니다.
풀고 시작
유행 소설을 죽이러 온 소설
1605년 마드리드에서 나온 『라만차의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는 문학사를 열겠다는 야심작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스페인 서점가를 휩쓸던 기사도 로망스, 그러니까 무적의 기사가 마법사를 물리치고 공주를 구하는 판타지 시리즈물을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책이었습니다. 『아마디스 데 가울라』가 대표작이었고, 오늘날로 치면 양산형 웹소설 장르에 가까웠죠. 세르반테스의 설정은 단순합니다. 그 소설들을 너무 많이 읽어 머리가 이상해진 시골 하급 귀족이, 자기도 기사라고 믿고 녹슨 갑옷을 입고 집을 나섭니다. 첫 문장부터 태평합니다. "라만차의 어느 마을에, 이름은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로 시작하죠. 영웅의 출신을 성대하게 읊는 서사시 관습을 대놓고 걷어차는 시작입니다.
두 개의 눈이 같은 것을 다르게 봅니다
패러디는 보통 한 번 웃기고 끝납니다. 이 책이 특별해진 것은 웃음 뒤에 남는 구조 때문입니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돌진하고, 여관을 성으로 여기며, 이웃 마을의 농가 처녀를 마음속 귀부인 둘시네아로 삼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현실만 보이는 농부 산초 판사가 붙어 다니며 저건 거인이 아니라 풍차라고 말합니다. 같은 사물을 두고 두 사람의 언어가 계속 어긋나는 것, 이것이 이 작품이 발명한 엔진입니다. 세계가 무엇인지 서술자가 위에서 확정해 주지 않고, 인물들의 관점이 부딪히는 자리에서 현실이 만들어집니다. 러시아 이론가 바흐친은 이렇게 여러 목소리가 맞서는 성질을 소설 장르의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 게다가 세르반테스는 이 이야기를 자기가 쓴 게 아니라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라는 아랍인 역사가의 원고를 구해 번역시켰다고 능청을 떱니다. 화자마저 못 믿을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죠.
인물이 자기가 나온 책을 읽습니다
10년 뒤인 1615년 2부에서 세르반테스는 훨씬 대담한 장난을 칩니다. 2부의 돈키호테와 산초는 1부가 이미 출판되어 유럽에서 읽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학사 삼손 카라스코가 찾아와 두 사람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 잘 팔리고 있다고 알려 주고, 이후 만나는 사람들은 그가 유명인이라는 걸 알고 접근합니다. 여기에는 실제 사건도 얽혀 있습니다. 1614년 아벨라네다라는 필명의 누군가가 가짜 속편을 먼저 내버렸고, 화가 난 세르반테스는 작품 안에서 그 위작을 직접 언급하며 응수합니다. 소설이 자기 바깥의 출판 시장과 독자와 표절 사건까지 삼켜 버린 셈입니다. 400년 뒤 포스트모던 소설이 자랑스럽게 내놓은 자기반영 기법이, 장르의 출발점에 이미 통째로 들어 있었습니다.
알제에 붙잡혀 있던 작가
이런 책을 쓴 사람의 인생도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는 1571년 레판토 해전에 참전해 왼손을 못 쓰게 되었고, 1575년 귀국길에 해적에게 붙잡혀 알제에서 5년간 포로로 지내다 몸값을 치르고 풀려났습니다. 돌아와서는 함대 물자 조달과 세금 징수 일을 하다 회계 문제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문학으로 큰돈을 벌지도 못했고, 『돈키호테』가 대박이 났을 때 그는 이미 쉰일곱이었습니다. 실패와 포로 생활을 겪은 사람이 환상을 믿는 자의 이야기를 썼다는 사실은, 이 작품을 단순한 조롱으로 읽기 어렵게 만듭니다.
여기서 소설이 시작됐다는 말의 뜻
그럼 왜 이 책을 근대 소설의 출발점이라고 부를까요. 영웅 대신 착각하는 평범한 인간을 주인공에 앉혔고, 운명 대신 개인의 내면과 오해를 사건의 동력으로 삼았으며, 이야기 자체를 의심 대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것이 정설로 굳은 것은 아닙니다. 영문학 쪽에서는 이언 와트처럼 18세기 영국에서 소설이 시작됐다고 보는 계보가 강하고, 11세기 초 일본 궁정의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겐지 이야기』(源氏物語)를 최초의 장편소설로 꼽는 시각도 있습니다. 해석도 갈립니다. 18세기 독자들은 이 책을 배꼽 잡는 코미디로 읽었지만,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은 속물 세상에 맞선 고귀한 이상주의자의 비극으로 다시 읽었습니다. 어느 쪽이 맞다기보다, 한 작품이 두 독법을 모두 견딜 만큼 두껍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 장르가 어떻게 돈이 되는 상품으로 자리 잡는지 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어떤 장르를 비웃기 위해 만든 작품이 그 장르를 뛰어넘는 고전이 되는 일은 왜 반복될까요. 오늘날 우리가 가볍게 소비하는 장르 중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만한 곳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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