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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일상 1강. 물고기는 물을 모릅니다

문화는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통해 바라보는 렌즈입니다. 렌즈는 원래 눈에 띄지 않죠.

풀고 시작

문제 1. 사회학에서 말하는 문화의 정의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학과 인류학은 문화에서 고급이라는 딱지를 떼어냈습니다. 오페라도 문화지만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유지하는 간격도 문화죠. 물질 수준은 문화의 일부일 뿐이고, 문화는 유전이 아니라 학습으로 전달된다는 점이 결정적입니다.

문화라는 이름의 물

낯선 나라 공항에 내리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감각입니다. 사람들이 서 있는 간격, 목소리의 크기, 눈을 마주치는 시간이 미묘하게 어긋나죠. 그제야 우리는 그동안 지켜온 규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문화는 어긋날 때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는 1871년 『원시문화』에서 문화를 지식과 신앙, 예술, 도덕, 법, 관습을 비롯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모든 능력과 습관을 포함하는 복합 총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문장이 결정적이었던 이유는 문화에서 고급이라는 딱지를 떼어냈기 때문입니다. 다만 타일러 자신은 사회들을 야만과 미개와 문명이라는 단계로 줄 세운 진화론자였습니다. 정의에서는 등급을 지웠지만 이론에는 등급을 남겨둔 셈이죠. 사회학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문화를 사람들이 세상에 의미를 붙이는 공유된 체계로 봅니다. 금속 고리가 약속이 되고, 흰색이 어떤 사회에서는 신부의 색이고 다른 사회에서는 상복의 색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의미는 사물에 붙어 있지 않고 집단의 합의에 얹혀 있습니다.

내 자를 세상에 들이댈 때

1906년 사회학자 윌리엄 그레이엄 섬너는 자기 집단의 방식을 인류의 표준으로 삼는 태도에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른 집단의 관습을 야만이라 부르는 순간, 우리는 관찰이 아니라 채점을 하고 있는 셈이죠. 반대편에는 프란츠 보아스와 그 제자들이 세운 문화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가 있습니다. 각 문화는 그 문화의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할 지점이 있습니다. 보아스가 세운 것은 일차적으로 연구 방법의 원칙이었습니다. 판단을 잠시 미루고 먼저 이해하라는 규칙이었죠. 이것을 어떤 관행도 비판할 수 없다는 도덕적 결론으로 밀고 가면 곤란한 자리에 도착합니다. 실제로 1947년 미국인류학회는 세계인권선언 초안이 특정 문화의 가치를 보편으로 내세운다며 유보 의견을 냈습니다. 이 문서는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되었고, 결국 1999년 미국인류학회는 인권 옹호를 명시한 새 선언을 채택하며 사실상 입장을 바꿉니다. 이해하기 위한 상대주의와 판단을 포기하는 상대주의는 다른 물건입니다.

대중문화는 마취제인가 놀이터인가

같은 텔레비전을 두고 20세기 사회학은 정반대의 진단을 내놓았습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1947년 『계몽의 변증법』에서 문화산업(Kulturindustrie)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대중문화는 공장에서 찍어낸 표준화된 상품이며, 사람들에게 저항 대신 순응을 훈련시킨다는 것이죠. 나치를 피해 망명한 두 사람이 미국의 라디오와 영화 산업을 보며 쓴 글이라는 배경을 알면 이 냉소가 조금 이해됩니다.

영국의 문화연구는 다른 쪽 끝에서 출발했습니다. 리처드 호가트와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노동계급의 일상 문화를 진지한 연구 대상으로 끌어올렸고, 호가트가 1964년 버밍엄에 세운 현대문화연구소가 그 거점이 됩니다. 연구소를 이어받은 스튜어트 홀은 1973년에 부호화와 해독 모델을 제시합니다. 제작자가 메시지를 심어도 수용자는 그대로 받지 않고 지배적, 타협적, 대항적 방식으로 읽어낸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전통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수용자의 저항을 지나치게 낭만화해 산업의 힘을 과소평가한다는 지적이 1990년대에 문화 포퓰리즘 논쟁으로 이어졌죠. 두 진영 중 한쪽이 이겼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어느 쪽도 상대를 지우지 못한 채 오늘의 알고리즘 논쟁으로 넘어왔습니다.

취향은 계급을 실토합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1979년 『구별짓기』에서 놀라운 주장을 폅니다. 우리가 가장 개인적이라고 믿는 취향이야말로 계급의 지문이라는 것입니다. 1960년대 프랑스의 대규모 설문 자료를 분석한 그는 학력과 출신 계급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 그림, 음식, 심지어 사진의 소재까지 체계적으로 갈린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렇게 몸에 새겨진 성향의 다발을 아비투스(habitus)라 부르고, 학위와 안목처럼 돈이 아니면서 돈처럼 작동하는 자원을 문화자본이라 부릅니다. 취향은 분류하고, 분류하는 자를 분류합니다.

다만 이 도식을 그대로 다른 사회에 옮기는 데는 신중해야 합니다. 리처드 피터슨은 1992년 미국 자료에서 상층이 고급 장르만 고집하기는커녕 클래식부터 대중음악까지 넓게 소비하는 경향을 발견하고 문화적 잡식성(cultural omnivore)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잡식성 자체가 새로운 형태의 구별짓기라는 해석도 있고, 사회마다 결과가 갈린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취향과 계급 위치가 함께 움직인다는 상관이고, 그 연결 고리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 문화의 가장 오래된 형태인 종교를 다룹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타일러의 문화 정의가 사회학에서 결정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타일러 이전에는 문화가 곧 교양을 뜻했습니다. 지식과 신앙, 도덕, 관습을 모두 묶은 그의 정의 덕분에 식사 예절과 줄 서는 방식도 연구 대상이 되었죠. 문화는 유전이 아니라 학습으로 전달된다는 점도 이 정의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문제 2. 문화상대주의를 다룰 때 사회학이 구분하라고 요구하는 두 가지는 무엇인가요?
보아스 전통이 세운 것은 일차적으로 방법론적 원칙이었습니다. 이것을 도덕적 결론으로 밀고 가면 인권 침해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 자리에 도착하죠. 1947년 미국인류학회의 세계인권선언 유보 의견이 바로 그 긴장을 보여준 사건이고, 이후 오래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문제 3.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문화산업론과 버밍엄 문화연구의 차이를 옳게 짝지은 것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대중문화를 공장 제품에 비유했고, 스튜어트 홀은 같은 메시지도 지배적, 타협적, 대항적으로 읽힌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문화연구도 수용자의 저항을 낭만화했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논쟁을 끝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문제 4.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논지에 대한 문화적 잡식성 연구의 함의로 옳은 것은?
피터슨은 1992년 미국 자료에서 상층일수록 오히려 장르를 넓게 소비하는 경향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고급 취향과 상층을 일대일로 묶는 그림을 흔들었지만, 소비의 폭 자체가 새로운 구별짓기라는 해석도 있죠. 상관은 견고하고 그 작동 방식은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당신이 가장 개인적이라고 믿는 취향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그 취향이 만들어진 자리에 부모의 학력, 자란 동네, 다닌 학교가 정말 한 줌도 섞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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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지 · 궁금하면 모던지 GitHub ·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