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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과 면역 1강. 세균과 바이러스

인류 역사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것은 전쟁도 맹수도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인류가 받아들이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죠.

풀고 시작

문제 1. 코흐의 공리에 따라 어떤 미생물이 특정 질병의 원인임을 입증하려면 무엇까지 보여야 할까요?
병든 개체에서 발견되는 것은 상관관계일 뿐입니다. 인과를 입증하려면 순수 배양, 접종을 통한 재현, 재분리까지 필요하다는 것이 코흐의 공리죠. 항생제 감수성은 원인 입증과 무관합니다.

제멜바이스의 비극: 증거가 있어도 지는 싸움

1847년 빈 종합병원의 산과 의사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는 이상한 통계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의사가 담당하는 병동의 산욕열 사망률이 조산사가 담당하는 병동보다 몇 배나 높았던 겁니다. 그는 원인을 추적했습니다. 의사들은 시체 해부를 마친 손으로 곧장 분만을 도왔고, 조산사들은 해부를 하지 않았죠. 제멜바이스는 염소 소독액으로 손을 씻게 했고, 사망률은 극적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기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병을 옮기는지 설명할 이론이 없었고, 의사가 환자를 죽인다는 함의는 동료들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배척당했고 1865년 정신병원에서 쓸쓸히 죽었습니다. 데이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이론이 함께 있어야 과학은 사람을 설득합니다.

질병 세균설의 확립: 파스퇴르와 코흐

그 이론을 세운 사람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입니다. 그는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으로 생명이 저절로 생기지 않으며, 부패와 발효는 공기 중 미생물이 일으킨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미생물이 술을 상하게 한다면 사람도 병들게 할 수 있겠죠. 질병 세균설(germ theory of disease)의 탄생입니다.

이를 엄밀한 검증 절차로 완성한 사람이 독일의 코흐(Robert Koch)입니다. 그는 탄저균(1876), 결핵균(1882)을 잇달아 규명하며 코흐의 공리를 세웠습니다. 첫째, 병든 개체에서 그 미생물이 발견되고 건강한 개체에는 없어야 합니다. 둘째, 그 미생물을 순수 배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배양한 미생물을 건강한 개체에 접종하면 같은 병이 생겨야 합니다. 넷째, 그 개체에서 같은 미생물이 다시 분리되어야 합니다. 상관관계를 인과로 바꾸는 이 절차는 흄이 제기한 인과 문제에 대한 의학의 실무적 답변이라 할 만합니다. 그는 이 업적으로 19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고, 제멜바이스가 이론 없이 홀로 외치다 무너진 자리를 두 사람의 이론과 절차가 반세기 만에 메웠습니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중은 둘을 뭉뚱그려 "병균"이라 부르지만, 둘의 차이는 생명과 비생명의 경계에 걸쳐 있습니다.

구분 세균 바이러스
크기 대략 1마이크로미터 수준 대략 수십~수백 나노미터
구조 원핵세포(세포막, 세포벽, 리보솜) 세포가 아님(유전물질 + 단백질 껍질)
대사 스스로 대사하고 분열한다 대사 기구가 없다
증식 이분법으로 독립 증식한다 숙주 세포를 탈취해야만 증식한다
항생제 듣는다 전혀 듣지 않는다

세균은 세포 과목에서 본 원핵세포 그 자체로, 스스로 먹고 자라고 분열하는 완전한 생명체입니다.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을 단백질 껍질에 담은 입자일 뿐이어서, 숙주 밖에서는 어떤 생명 활동도 하지 않죠. 그래서 바이러스가 생명인가라는 질문은 1강에서 다룬 생명의 정의 문제로 되돌아갑니다.

바이러스의 증식 전략: 남의 공장을 훔치다

바이러스의 전략은 단순하고 냉혹합니다. 표면 단백질로 숙주 세포의 특정 수용체에 부착하고, 유전물질을 세포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다음 숙주의 리보솜과 효소, 원료를 통째로 탈취해 자기 유전체와 단백질을 대량 복제하게 만들고, 부품을 조립해 새 바이러스 입자를 만든 뒤 세포를 터뜨리거나 세포막을 빌려 빠져나갑니다. 세균을 감염시키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는 이 과정의 고전적 모델이죠. 감기에 항생제가 소용없는 이유가 여기서 명확해집니다. 항생제는 세균의 세포벽이나 리보솜 같은 세균 고유 구조를 겨냥하는데, 바이러스에는 그런 구조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항생제 이야기는 4강에서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그전에 다음 강에서는 우리를 병들게 하는 미생물이 아니라, 우리 몸에 살면서 우리를 돕는 미생물의 세계를 봅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제멜바이스의 손 씻기 주장이 당대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핵심 이유로 본문이 강조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의 데이터는 명확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 병을 옮기는지 설명할 이론이 없었다는 점과, 의사 자신이 원인이라는 결론이 심리적 저항을 불렀다는 점이죠. 질병 세균설이 세워진 뒤에야 손 씻기는 상식이 되었습니다.
문제 2. 파스퇴르와 코흐의 기여를 가장 정확히 구분한 것은 무엇일까요?
파스퇴르는 자연발생설을 무너뜨리고 질병 세균설의 틀을 세웠습니다. 코흐는 탄저균과 결핵균을 규명하며 인과 입증 절차인 공리를 만들었죠. 항생제 발견은 훨씬 뒤 플레밍의 일입니다.
문제 3. 세균과 바이러스의 차이로 옳은 것은 무엇일까요?
세균은 완전한 원핵세포이고 바이러스는 유전물질과 단백질 껍질뿐인 입자입니다. 크기도 바이러스가 훨씬 작죠. 항생제는 세균 고유 구조를 겨냥하므로 바이러스에는 원리적으로 듣지 않습니다.
문제 4. 감기(바이러스 감염)에 항생제가 소용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항생제의 선택적 독성은 세균 고유 구조를 겨냥하는 데서 나옵니다. 바이러스는 그런 구조 자체가 없는 비세포 입자이므로 표적이 존재하지 않죠. 내성은 세균에서 성립하는 개념이지 이 상황의 이유가 아닙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바이러스는 숙주 안에서는 증식하고 진화하지만 스스로는 대사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정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면, 그 정의 자체를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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