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과 면역 2강. 마이크로바이옴: 몸속의 생태계
당신 몸에는 당신의 세포만큼 많은 미생물이 삽니다. "나"는 단일 생물이 아니라 걸어다니는 생태계인 셈이죠.
풀고 시작
인체라는 서식지: 숫자로 본 규모
혹시 "인체 세포보다 미생물이 10배 많다"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인간의 장, 피부, 입, 호흡기에는 세균을 중심으로 한 미생물 군집, 곧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 삽니다. 오랫동안 저 10배 설이 통용되었지만, 2016년 이스라엘 연구진(센더, 푹스, 밀로)의 재계산에 따르면 인체 세포 약 30조 개에 미생물 약 38조 개로, 대략 1 대 1에 가깝습니다. 10배 설의 정정은 이 분야의 좋은 교훈입니다. 인상적인 숫자일수록 출처를 다시 세어 봐야 하죠. 그래도 결론의 뼈대는 남습니다. 우리 몸의 절반가량은 우리 유전체가 만든 세포가 아니며, 미생물 유전자의 총량은 인간 유전자 수를 압도합니다.
장내 미생물은 무엇을 하는가: 확립된 것과 과장된 것
확립된 기능부터 보겠습니다. 장내 세균은 인간의 효소가 분해하지 못하는 식이섬유를 발효시켜 단쇄지방산을 만들고, 이것은 장 세포의 에너지원이 됩니다. 비타민 K 등 일부 비타민을 합성하고, 좋은 자리를 선점해 병원균의 정착을 막으며, 발달기 면역계가 적과 동지를 구분하도록 훈련시키죠. 무균 상태로 키운 쥐의 면역계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반복 확인된 결과입니다. 이 군집은 사람마다 다르고, 식습관과 출생 방식, 항생제 사용 이력에 따라 평생에 걸쳐 변합니다.
반면 시장과 언론에는 과장이 넘칩니다. 장내 미생물 조성은 비만, 우울증, 자폐 등과 상관관계가 보고되어 있지만, 사람에서의 인과관계와 치료 효과는 대부분 아직 검증 중입니다. "유산균만 먹으면 살이 빠진다"거나 "장이 성격을 결정한다"는 주장은 확립된 과학이 아니죠. 균 조성이 병을 만든 것인지, 병이나 식습관이 균 조성을 바꾼 것인지 방향조차 확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1강의 교훈 그대로입니다. 상관관계에서 인과로 가는 길에는 코흐의 공리 같은 엄격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마셜의 자가 실험: 통설을 마셔서 무너뜨리다
인과 입증의 극적인 사례가 위 속에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까지 의학 통설은 "위는 강산이라 세균이 살 수 없고, 위궤양은 스트레스와 위산 과다 탓"이었습니다. 호주의 병리학자 워런(Robin Warren)은 위염 환자의 조직에서 나선형 세균을 반복 관찰했고, 젊은 의사 마셜(Barry Marshall)과 함께 1982년 이 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의 배양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학계는 냉담했죠. 궤양은 만성 스트레스의 병이라는 통설이 굳건했고, 제약 시장은 평생 복용하는 제산제 중심으로 짜여 있었습니다. 동물 모델도 마땅치 않자 1984년 마셜은 배양한 균을 직접 들이마셨고, 며칠 만에 급성 위염을 얻어 자기 위에서 균을 재확인했습니다. 사실상 자기 몸으로 코흐의 공리를 수행한 겁니다. 이후 항생제 병용 요법이 궤양을 완치시킨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두 사람은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제멜바이스와 달리 그들이 이긴 이유는 배양된 균과 재현 가능한 메커니즘, 곧 이론과 증거를 함께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항생제라는 산불: 생태계 교란
미생물이 생태계라면 광범위 항생제는 산불에 비유할 만합니다. 병원균만 골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유익균까지 쓸어버리기 때문이죠. 대표적 결과가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레(C. difficile) 감염입니다. 항생제로 장내 경쟁자들이 사라진 빈자리에서 이 균이 폭증해 심한 장염을 일으킵니다. 흥미로운 치료법이 생태학적 발상에서 나왔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 군집을 통째로 이식하는 분변 미생물 이식(FMT)은 재발성 디피실레 감염에 높은 치료 성적을 보입니다. 균 하나를 죽이는 발상이 아니라 생태계를 복원하는 발상이죠. 그렇다면 우리 몸은 이 수많은 미생물 이웃과 침입자를 어떻게 구분하고 방어할까요. 다음 강의 주제인 면역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내 몸의 절반이 미생물이고 그들이 소화와 면역에 필수적이라면, "나"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요. 미생물까지 포함한 전체를 하나의 개체로 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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