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5강. 진화에 대한 오해들
진화는 위로 오르는 계단이 아닙니다. 방향도 목적지도 완성형도 없습니다.
풀고 시작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진화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습니다. 자연선택은 지금 이 환경에서의 번식 성공만을 거르므로, 결과는 상황에 따라 복잡해지는 쪽일 수도 단순해지는 쪽일 수도 있죠. 동굴어가 눈을 잃은 것도, 기생충이 소화관을 버린 것도 어엿한 적응입니다. 진화는 개선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맞춤의 이야기입니다. 지구 생물량과 종 다양성의 관점에서 가장 성공한 생물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인간이 아니라 세균이며, 세균은 수십억 년째 번성 중입니다. 다윈 자신도 읽던 책의 여백에 "높다, 낮다라는 말을 결코 쓰지 말 것"이라고 메모했습니다. 고등 생물과 하등 생물이라는 표현은 진화를 목적지 있는 계단으로 오독하게 만드는 사다리 언어의 잔재죠. 4강에서 본 진보의 행진 도상이 인류 진화를 왜곡했듯, 이 사다리 관념은 생명 전체에 대해서도 같은 왜곡을 일으킵니다.
개체는 진화하지 않는다
진화의 단위를 혼동하는 오해도 흔합니다. 개체는 태어난 유전자를 평생 지니고 살 뿐 진화하지 않습니다. 진화란 집단 안에서 대립유전자의 빈도가 세대를 거치며 변하는 것입니다. 기린의 목으로 비교하면 선명해지죠. 목을 늘이려는 노력이 유전된다는 것이 라마르크의 그림이고, 원래 목 길이가 제각각인 집단에서 긴 목 개체가 더 잘 번식해 집단의 평균이 이동한다는 것이 다윈의 그림입니다. 2강의 항생제 내성도 같았습니다. 세균 한 마리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구성이 바뀌는 것이죠. 진화를 보려면 개체의 일생이 아니라 세대를 가로지르는 집단의 장부를 봐야 합니다.
"그냥 이론일 뿐"이라는 말
일상어에서 이론은 검증 안 된 추측을 뜻하지만, 과학에서 이론(theory)은 광범위한 사실들을 통일적으로 설명하고 검증을 견뎌 온 체계를 뜻합니다. 세균병인론, 원자론, 판구조론이 "그냥 추측"이 아니듯 진화론도 그렇죠. 정확히 말하면 진화는 사실이자 이론입니다. 생물이 변해 왔고 공통 조상을 가진다는 것은 화석, 상동, DNA가 수렴 지지하는 사실이고, 자연선택은 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이론이 승급하면 법칙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과학 지식이 왜 확실성이 아니라 반증을 견딘 정도로 평가되는지는 철학 서가의 흄의 귀납 문제와 과학철학 과목이 이어서 다룹니다.
사회다윈주의라는 오용
"적자생존"이라는 말, 사실 다윈이 만든 표현이 아닙니다. 철학자 스펜서의 표현이며, 19세기 말 이 말은 빈부 격차, 제국주의, 나아가 우생학을 자연의 법칙으로 정당화하는 데 동원됐습니다. 이른바 사회다윈주의죠. 이것은 과학의 오용입니다. 첫째,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사실)에서 일어나야 할 일(당위)을 끌어내는 것은 흄이 지적한 사실과 당위의 혼동, 곧 자연주의적 오류입니다. 중력이 사실이라고 밀치기가 정당해지지 않죠. 둘째, 과학적으로도 왜곡입니다. 적합도는 환경 상대적이며 협력과 이타성 역시 자연선택이 만들어 낸 전략입니다. 진화론은 세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기술이지 사회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이 아닙니다.
진화와 종교: 입장은 하나가 아니다
진화와 종교의 관계에도 단일한 답은 없습니다. 지구 나이를 수천 년으로 보는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론은 진화론과 정면충돌하며, 2005년 미국 도버 재판은 지적설계를 과학 수업에서 가르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반면 굴드는 과학과 종교가 사실과 의미라는 겹치지 않는 영역을 다룬다는 NOMA 원리를 제안했고,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끈 콜린스처럼 진화를 신의 창조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유신론적 진화의 입장도 있죠. 가톨릭교회도 1996년 진화를 가설 이상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다윈 자신은 만년에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로 표현했을 뿐 종교 논쟁의 전면에 서지 않았습니다. 충돌은 필연이 아니라 여러 입장 중 하나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진화가 방향 없는 과정이라면, 지적 생명의 출현은 우연일까요, 아니면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반복될 결과일까요.
- 사실에서 당위가 나오지 않는다면, 진화에 대한 지식은 윤리에 아무 기여도 할 수 없을까요.